[흔들리는 생명] (2) 결혼은 꼭 해야하나- 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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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사회는 새 밀레니엄을 맞아 이중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우리를 괴롭혔던 과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새 밀레니엄 과제들이 다가오고 있다.

이같은 두개의 비동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21세기의 기준(스탠더드)에 걸맞은 미래지향적 가치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중앙일보가 새천년준비위원회.사이버 중앙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연중기획 '21세기로 맞추자' 의 두번째 화두(話頭)는 '결혼은 꼭 해야 하나' 로 삼았다.

매달 하나의 주제(1월의 주제는 '흔들리는 생명' )를 제시하고 매주 우리 생활과 밀착된 얘깃거리를 찾아 건설적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이 지상토론에 독자 여러분의 열띤 참여를 기대한다.

인터넷(http://www.joins.co.kr)의 '21세기로 맞추자' , (http://code21.joins.co.kr). 팩스(02-751-5228)

[문제제기]

결혼은 꼭 필요한가. 결혼을 천륜이라 생각했던 시대관은 바뀌어가고 있다.

성적 자유의 확대와 이혼의 증가는 결혼에 대한 기존관념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이혼과 결손가정 증가 등의 문제로 혈통 중심의 가족제도에도 중대한 변화가 야기되고 있다. 이같은 경향에 대한 평가도 갈리고 있다.

모성 붕괴와 가족 해체를 가속화한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기존의 결혼제도가 갖는 억압적 성격을 고려하면 불가피하지 않으냐는 견해도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렇다면 꼭 필요한가. 자유로운 동거도 허용돼야 할 것인가.

나아가 전통적 강한 혈연중심의 가족제도 해체와 대안제도의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모두가 중요한 논쟁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결혼은 꼭 필요한가' 를 묻고자 한다.

<새천년위원회>

◇ 안하는 것보다 유리…주저할 이유없어

1980년대 중반 전국의 부부 8백쌍을 대상으로 '당신은 왜 결혼했는가' 라는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남편의 경우는 '전통적 관례이므로' '아들 낳아 대를 잇기 위해' '남들 다 하니까'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순으로 결혼에 대한 변(辯)을 제시했다.

반면 부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므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 그리고 '남들 다 하니까' 결혼했노라는 답을 내놓았다.

15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질문을 해본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평소 결혼에는 별 관심이 없던 선배가 드디어 결혼을 했다. '선배, 결혼해서 제일 좋은 게 뭐유' 물었다. '한가지 있지. 소수에서 다수가 된 것' 이란 현답(賢答)을 해 주었다.

결혼에 관한 질문만큼 우문(愚問)도 없다. '세상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결혼이란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듯이 반드시 안해야 할 이유도 없다.

현실을 살펴보면 반드시 결혼을 안해야 할 이유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결혼율'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나라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부닥치는 복잡한 시선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어차피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너 언제 결혼할거야'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느니,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결혼율이 높은 곳일수록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는 규범이 발달돼 있다. 이를 새겨본다면 결혼하는 게 유리한 것은 분명해진다.

나아가 우리 문화가 개인의 존재양식을 규정하는 방식, 다시 말해 결혼압력이 왜 그토록 강한지 생각해보면,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보다 명백해진다. 우리 문화 속에서 '나' 는 '독립된 인격체' 나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존재' 가 아니다. '나' 의 존재는 어디서 뉘집 자식으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규정되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에 따라 평가되며, 누구와 결혼해서 자녀는 몇이나 두었는지에 따라 비로소 어른 대접을 받게 된다.

물론 독신으로서 얻는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치평가를 떠나 여성으로서 개인의 존재가 기본적으로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상황에서는 아웃사이더로 남아 서성댐으로써 부닥치는 피곤한 결과를 상상해 본다면 결혼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증가하는 이혼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율이 줄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결혼에 일정한 미덕이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과거의 가부장적 결혼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젠 '결혼 꼭 해야하나' 보다는 '어떤 결혼을 해야 하나' 로 우리의 질문을 바꿔야 한다.

결혼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을 때, 결혼은 권장할 만한 제도로 남게 될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페미니즘이 주창하는 것처럼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가족이 표방하는 이타주의와 공동체적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결혼이라면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친밀성의 상징인 결혼관계에서 민주화가 실현될 때만이 진정 민주주의가 완성되리라고 본 앤서니 기든스의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누가 결혼을 주저하겠는가.

함인희(이화여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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