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경찰 주장 이해 가지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승현 사건사회부 기자

요즘 경찰은 검찰과 일전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격앙된 분위기다. 일선 경찰 간부가 인권위에 검찰의 인권 침해를 문제삼아 진정을 내고, 법무부 산하 교정청을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경찰의 모습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일선 경찰들은 "기고만장한 검찰에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등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검찰이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하면 '수사 방해'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경찰 비리를 수사하면 '표적 수사'라고 말할 정도다.

폴네띠앙이라는 경찰들의 인터넷 동호회에서는 '독도는 우리 땅'노래의 가사를 바꿔 검찰을 '권력의 고향'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여기에 허준영 경찰청장은 수사권 조정 요구와 관련해 "우리의 요구는 에누리 없는 원가"라는 등의 자극적인 발언도 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10만 경찰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의 울분에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분명 있다. 형사사건의 97%를 수사해 왔음에도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법규에 갇혀 설움을 겪었다.

회갑을 바라보는 경찰 간부가 20대의 초임 검사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고, 부당한 검찰의 지휘에 경찰이 책임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해야 한다"며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브레이크도 없이 한풀이식 주장을 하는 것은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지휘기관인 검찰을 공개적으로 헐뜯어 얻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히려 국민은 공권력의 상징인 국가기관이 법치주의를 거스르는 것처럼 느낀다.

경찰서에 불려가 본 사람은 "두번은 못 갈 곳"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그만큼 경찰은 국민들에게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진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경찰이 수사권 독립이라는 큰 목적을 달성하려면 감정적 대응보다 국민에게 그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때다.

김승현 사건사회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