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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보호책 흐지부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해 인천 호프집 화재와 원조교제의 성행 등을 계기로 정부가 내놓은 굵직굵직한 청소년 보호대책이 겉돌고 있다.

발표만 무성했지 단속 등이 제대로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 청소년 출입금지구역〓12일 0시10분쯤 네온사인 간판이 환하게 불을 밝힌 서울 광진구 화양리 속칭 '먹자골목' 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K소주방. 안으로 들어가자 3~4개의 좌석에서 앳된 모습의 10대들이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신을 고교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이 골목이 '청소년 출입금지구역(레드존)' 임을 아느냐는 질문에 "한번도 출입을 제지당한 적이 없다" 고 말했다.

이 업소 주인도 "'청소년을 출입시키면 처벌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애들마저 받지 않으면 문닫으란 얘기냐" 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호프집.소주방.카페에 청소년을 출입시킬 경우 업주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로 했지만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전화방.불법 광고〓정부는 지난해 4월 10대 원조교제의 온상으로 알려진 전화방의 음란 폰팅용 전화회선 1천2백여개를 전면 폐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서울 시내 유흥가의 상당수 업소들이 '휴게방' 으로 간판만 바꿔 단 채 전화.비디오 시설 등을 갖추고 이성들과 전화 통화를 연결해주고 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휴게방을 운영하는 李모(40)씨는 "서울에만 이런 업소가 1천여 개에 달하다" 면서 "한달에 20만원씩 쓰면 관청의 단속을 피할 수 있다" 고 털어놨다.

정부는 또 지난해 7월 생활정보지.스포츠신문 등을 통한 불건전 광고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생활정보지 등에는 '남성 전용 전화방 성업 중, 여성 단골손님 다량 확보' 등의 광고가 버젓이 게재되고 있다.

◇ 음란사이트 규제 등〓정부는 지난해 8월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 유통되는 음란물을 막겠다고 발표했으나 해외 서버를 이용한 국내 음란사이트가 1백여개에 달하는 등 허술하기만 하다.

◇ 문제점.대책〓지방자치단체나 경찰 등 사법기관의 지속적인 단속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고.사건이 일어나면 요란하게 대책을 내놓지만 여론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단속의 손길을 늦추는 고질적인 병폐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학계와 정부 일각에선 청소년 보호 정책을 통합적으로 수립.관리하는 범정부적 대책기구가 설립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무영.최민우.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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