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벌써 타락·불법선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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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각당의 후보 공천도 안 끝났는데 벌써부터 4월 총선 후유증을 걱정해야 할 만큼 불법.타락 사전 선거운동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현 정부 출범 때부터 외쳐온 정치개혁의 흔적은 구경조차 할 수 없고 과거의 불법.타락에 신종 불법 선거까지 가세해 혼탁을 더하는 중이다.

중앙선관위의 사전 선거운동 단속 결과는 실상을 여실히 말해준다. 선관위가 16대 총선 사전 선거운동으로 적발한 사례는 지난해 말 현재 6백34건으로 15대 같은 기간의 10배에 이른다.

지난 연말에만도 1백여건의 위반사례가 적발되는 등 금품살포.선심관광.불법 인쇄물 배포 등 전형적인 수법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횡행하는 가운데 인터넷과 PC통신을 이용한 사전 선거운동까지 나타나 이미 15명이 적발됐다.

여기에 선관위의 불법 경고를 무릅쓰고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특정인 낙천.낙선운동이 본격화되고 있어 선거판이 어떻게 굴러갈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선관위가 지역인사를 선발해 신고.제보 요원으로 확보하고, 종교.사회단체를 감시망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움츠러들 분위기가 아니다.

또 중앙에 7명, 시.도별로 4~5명의 인터넷 검색반을 운영한다지만 일단 봇물이 터지면 감당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뻔하다.여야 지도부가 무조건 승리를 외치고 있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표 줍기에 나서는 것이다.

게다가 현역 물갈이니 새 시대 정치니 하여 정치 지망생들은 잔뜩 늘어난 마당에 각당이 당선 가능성을 후보 공천의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니 엉터리 여론조사에 돈 살포 행태가 일찌감치 시작된 것이다.

설령 대통령이 나서서 '선거법 위반에 대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엄중히 다스려 선거문화를 바로잡겠다' 고 공언한들 현실은 꿈쩍도 않을 듯하다.

사실 대통령 스스로도 지역당 탈피를 명분으로 신당 창당 추진을 서두르면서 누차 총선 승리를 당부해 왔는데 이런 것들도 거친 총선 바람을 일찍부터 불게 한 것과 무관치 않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개혁이 그토록 강조되는 가운데 치러진 몇몇 재.보선에서 특정 후보의 '50억원 사용설' 이 나돌아도 아무런 조사나 사후 조치가 없었다.

최근에는 대통령의 선심성 공약이 시비가 되는 와중에 그를 뒷받침이라도 하는 양 서울시가 올해 예정된 각종 대규모 사업을 3월 내에 조기 발주하라는 지시를 구청에 시달했다.

행정관서는 이런저런 총선 지원 의혹을 받고, 경찰은 특정지역 출신 편중 인사로 물의를 일으키니 이대로라면 4.13 총선이 끝나는 즉시 돈선거.관권선거 시비에 망국병인 지역감정 논란까지 더해져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질까 두렵다.

이래선 안된다. 여야 지도부는 이제라도 혼탁.과열을 막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속해야 한다.

역시 선거혁명은 유권자 몫이다.

새 천년 정치를 위해서도 유권자가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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