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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특진 건 단속지시에 실적경쟁 과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잡혀왔는데 난데없이 '조직폭력배' 라니 웬 날벼락입니까. "

지난 5일 밤 서울 남부경찰서 형사계. 20여명의 10대 틈에 끼여 있던 朴모(15.중3)군은 자신이 금품갈취와 성폭행을 일삼은 폭력조직의 일원으로 지목됐다는 경찰 발표를 전해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찰이 밝힌 이들의 혐의는 폭력조직 '밀레니엄파' 를 결성,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일대 PC게임방 등을 돌며 상습 폭력을 휘두르면서 공짜 게임을 하고 10대 소녀들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영장을 신청한 21명 중 朴군 등 11명을 제외한 10명만이 폭력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이 사건을 검토한 서울 남부지청 검사는 "경찰이 올린 '폭력조직 결성' 부분도 현재로선 단정할 수 없는 상태" 라며 "가담자 중 절반은 혐의 내용이 경미해 불구속 처리했다" 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특진.포상이 걸린 '조직폭력배 소탕 1백일 작전' 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한달 사이 경찰은 5백97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4백77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경찰청이 오는 3월 9일까지 실적을 점수화, 경위 이하 30명을 특진시키고 표창과 최고 5백만원까지 주겠다는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면서 일선 경찰관서에서 실적 위주의 과잉 수사가 잇따르고 있다.

조직폭력범의 경우 통상 조직계보.행동강령.운영자금 등에 대한 명확한 혐의가 있어야 하는데도 10대 '잡범' 들까지 '조폭' 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엄파의 경우 현재까지 명백히 드러난 범죄 사실은 '공짜 게임' 을 한 정도다. 피해자인 PC방 업주들조차 '법원에 "이들이 불량 끼는 있지만 조폭과는 거리가 멀다" 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최근 서울 강남경찰서가 붙잡은 폭력조직 '탱크파' 는 '조직원 19명이 자해공갈 수법과 상습폭력으로 1998년 10월부터 모두 3억여원을 보험사로부터 타냈다' 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50대 아주머니와 그 아들.며느리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보험 사기단이지 조폭과는 거리가 멀다고 검찰측은 밝혔다.

보험금을 타기 위한 진단서를 발부받는 과정에서 간호사를 진료 차트로 한두 차례 때린 것이 폭력의 전부였다. 결국 19명중 단순 폭력.사기 등으로 3명만이 구속됐다.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 토사매립공사 이권을 노리고 유령업체를 차린 뒤 경쟁업자들을 폭행.협박해 공사 이권을 챙기고 금품 6천여만원을 갈취했다는 '영동파' 도 마찬가지. 검찰은 일당 7명 가운데 5명을 구속했으나 누구에게도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들은 일선 경찰관서에서 실적 경쟁을 벌이다 보니 무리한 수사가 없지 않다고 시인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내군 사무국장은 "범법자라도 범죄행위보다 과다하게 처벌받아서는 안될 것" 이라며 "경찰은 실적에 얽매여 사건을 과장하는 구태를 벗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강갑생.이무영.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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