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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연주자는 고생스러워도 청중은 재밌는 현대 음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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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피아노가 천천히 선율을 시작한다. 바이올린은 두 마디 후 등장해 네 개의 음을 연주한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의 ‘실내악 협주곡’(1925) 1악장 첫 부분이다. 정확한 제목은 ‘피아노·바이올린과 13대의 목관악기를 위한 실내악 협주곡’. 그런데, 바이올리니스트는 음표 네 개를 연주한 후 1악장 내내 하는 일이 없다. 무대 위에서 ‘청중’으로 8분여를 기다린다.

2악장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입장이 바뀐다. 피아노는 중간에 잠시 등장할 뿐이다. 이 악장은 바이올린과 목관악기 13대를 위한 연주곡. 이번에는 피아노 악보가 온통 쉼표다. 모든 악기의 합주는 3악장에서 이뤄진다.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좋은 의자를 따로 좀 준비해야겠다.” 호른 연주자인 김영률(서울대) 교수의 농담이다. 그는 14일 서울대 음대 관악합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이 작품을 한국 초연한다. 협연자로 나선 백주영(바이올린), 박종화(피아노)씨에게도, 목관 악기를 연주할 대학생들에게도 이 음악은 낯설다. 빠르기의 변화가 심하고 리듬이 복잡해 앙상블이 어렵다.

하지만 현대 음악의 재미를 맛보기에는 제격이다. 서양 음악의 ‘믿음’이었던 조성을 파괴한 쇤베르크의 제자인 베르크는 1악장 음표의 알파벳으로 스승과 자신의 이름을 암호처럼 숨겨놨다. 2악장은 거꾸로 읽어도 제대로 읽는 것과 똑같은 회문(回文)을 주요 테마로 했다. 3악장은 175마디를 반복하도록 만들어놔 자신의 작품을 곱씹도록 주문했다. 김 교수는 “12음 기법을 이용했지만 아름답게 들리도록 만들어진 작품”이라며 “신선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음악을 소개하게 돼 고생스럽지만 즐겁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서울대 음대 관악합주 정기연주회=14일 오후 2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880-7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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