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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보안법 폐지 발언에 정치권 대격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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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5일 MBC 방송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국보법 폐지와 관련한 여야간의 치열한 대격돌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론자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면서 폐지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한나라당은 이날 발언을 盧대통령의 정체성 문제와 연관시키며 국보법 폐지를 저지하기 위한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국가보안법 개폐문제 등 입법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열린우리당=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형법이나 대체입법을 통해 보완하는 방향으로 당론을 수렴할 방침인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이부영 의장은 이날 "국가보안법의 정리는 명실공히 데탕트 시대로 가는 세계 흐름과 같이 가고, 남북화해 분위기를 한반도에서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세계인권연맹이나 유엔 그리고 미국 국무부까지도 보안법 폐지를 여러차례 지적한바 있다"면서 "당내에 존재하는 두가지 큰 흐름을 조정하는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의장은 "국가보안법 문제가 종착점으로 향해가고 있으며,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20년 전 이뤄진 데탕트 시대의 법적, 제도적 결말을 보려는 것"이라며 "국보법 문제에 대해 아직 결말을 찾지 못한 것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냉전시대의 비극을 그대로 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독재시대 인권을 탄압하는 낡은시대의 유물이라고 지적한데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며, 국보법 문제는 이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문제"라면서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신속하게 당론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원내대표는 "형법에 내란 외환죄 조항이 있어 국가안보를 해치는 내란 외환죄에 대해 폭력행위 자체 뿐만 아니라 예비음모, 선전선동, 미수를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돼있다"며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국가안보가 흔들리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선동이고 파시즘"이라고 비판했다.

당내 국보법 개정파인 '국보법의 안정적 개정을 추진하는 모임'은 이날 오전 모임을 갖고 국보법 개정안을 마련, 여당내 개폐논란이 어떻게 조율될지 주목된다. 안영근 의원은 "모임에선 현 단계에서 국보법 전면 폐지는 남북 관계의 진전 상황으로 볼 때 아직 이른 면이 있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면서 "우리 개정안도 현실적인 개정안이지, 장기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박근혜대표가 노무현대통령의 국보법 폐기 입장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나라당=헌법재판소가 국보법의 고무 찬양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도 노 대통령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헌법 체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6일 "어제 대통령이 방송에서 말씀하신 것을 보니 무엇보다 국가관 정체성이랄까 법에 대한 대한 태도가 엄청나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헌재 판결도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서있는 법치 국가를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그걸 포기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온 국민이 지켜보믄 가운데 TV에 출연해 대한민국 정체성과 헌법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발언을 했다"며 " 친노세력을 결집해서 권력 장악력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인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그런건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은 북한의 근본적 변화 없는 상황에서 완전 폐지한다든가 폐지 수준의 개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경제위기론을 부정하던 여당 정부가 경제 회복 대책을 제시하고 방송사도 토론회를 여는 것으로 봐서 뭔가 달라지는 것을 기대했는데 결과는 역시나다"며 "사법부나 국민 여론과도 정면 배치하는 모습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확대하게 됐고 경제대책의 효과를 갉아먹게 됐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보법 폐기 주장 등과 관련, 盧대통령에게 공개 질의를하고 오후엔 긴급 의총을 소집, 당차원의 대책을 논의키로 했으며 '국가수호범국민비상대책회의(가칭)'를 당내에 설치키로 했다.

김정하 기자, 연합뉴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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