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빵집에선 찾아보기 힘든 옛날식 버터케이크는 B&C의 효자상품이다.
#2009년 가을 부산. 25년 전의 그 거리에 다시 섰다. 극장가를 거쳐 빵집 골목 쪽으로 들어오니 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매장의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근처에 있어야 할 고려당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창립 50주년이던 지난해 문을 닫았다고 했다. 대기업 브랜드 베이커리에 맞설 수 없어서였단다. 그뿐이 아니었다. 황태자·하얀풍차 등 부산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개 정도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빵집들이 그야말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오직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빵집은 B&C뿐인 듯했다.
‘Pride of Pusan(부산의 자존심)’. B&C 김준욱 사장의 명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는 27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대기업 빵집들의 공세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B&C 건물 4층의 공장에선 하루 종일 빵과 쿠키와 초콜릿이 구워진다. 즉석빵이 품어내는 따뜻한 향과 고소한 맛은 윈도베이커리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김 사장이 말하는 ‘우리의 방식’은 이 빵집이 처음 생겼던 때의 방식과는 좀 다른 듯했다. 과거 이 빵집은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다. 예를 들어 밤식빵의 경우, 이를 최초로 개발한 건 아니었지만 대중화를 이끈 곳은 B&C였다. 당시 사장까지 직접 나서 포장할 정도로 히트를 쳤고, 서울에서나 맛볼 수 있는 빵들을 부산에선 처음 소개하며 명성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요즘 B&C는 추억의 빵들이 더 큰 인기다. 매장 한 벽을 차지한 쇼 케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든 버터케이크들이다. 둥근 케이크에 하얀 버터를 바르고 반짝이는 빨간 젤리가 얹어져 있는 그 옛날 케이크 말이다. 어른들 생신 때나 내놓던 2단 버터 케이크도 있다.
“요즘도 저런 걸 먹나요?” 기자의 질문에 김 사장은 “우리집에선 하루에 적어도 100개가 팔린다”며 웃는다.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은 롤케이크. 2개짜리 세트가 1만원인데 포장하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전병과 호두과자도 베스트셀러다. 대부분의 제과점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전병을 사다 파는 반면 이곳에선 직접 만든다. 호두과자도 겉은 얇고 속은 팥소가 꽉 차고 호두가 통으로 씹히는 맛으로 인기다. 물론 크림치즈 빵, 고구마 치즈 케이크 등 신세대 입맛에 맞춘 빵들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신제품의 매출은 전통빵에 못 미친다.
코 앞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B&C가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김 사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싼 재료를 쓴 적이 없다. 정직한 맛에 대해 시민들이 평가해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밀가루를 구하기조차 힘들었던 밀가루 파동 때도 B&C 창고엔 100부대 이상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신뢰로 거래해 온 거래처가 B&C를 위해 미리 챙겨두었다는 것이다. 또 이곳 직원들은 한번 들어오면 뿌리를 박는 사람이 많다. 공장장도 15년 이상 근무했고, 현재 매장 관리 과장은 고교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충성도도 높다는 것이다.
재밌는 일화도 많다. 부산엔 드문 영어 상호에 어르신들은 이곳을 ‘ABC’ 과자점이라고 부른다. 고교 시절 B&C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부부가 자식들을 데리고 매장을 찾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김 사장은 “서울 출장을 가려고 부산역에 가면 우리 가게 쇼핑 가방을 든 분이 무척 많다”고 자랑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옛맛을 잊지 못해 들러 빵을 사가는 출향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B&C는 계속 ‘부산의 자랑’이란 자부심으로 맛있는 빵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중구 창선동1가 24번지, 051-245-2363, www.bnccake.com
글=이가영 기자
사진=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