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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쏙 빼는 한국형 오디션 리얼리티쇼, 그 생생한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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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마감시간을 지키지 않는 기자는 기본 자질이 안된 것 아닙니까.” 심사위원의 호통이 떨어지자 지적 당한 참가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카메라가 그의 눈물 닦는 모습을 놓칠 새라 클로즈업한다. “참가자들 가운데 한 명이 떨어져야 한다면 누구를 지목하시겠습니까.” 답변을 요구 받은 참가자는 주저하다가 이내 답한다. “○○씨가 미션 자체를 이해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제작사의 방침을 그대로 따라해 히트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왼쪽)와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디 에디터스’. [온스타일 제공]

지난달 중순 찾아간 온스타일 TV 리얼리티쇼 ‘디 에디터스’ 녹화현장. 우승자 1명이 패션매거진 ‘W 코리아’의 기자(에디터)로 채용되는 기회에 500여 명이 지원서를 냈다. 이 중 6명의 인턴십 8주가 ‘서바이벌’로 진행된다. 실제 채용이 이뤄지는 만큼 심사위원의 한마디도 까칠하기 그지 없다. 이날 미션을 통과해 ‘생존’한 신지수(27)씨는 “어차피 독 아니면 약”이라며 “공짜로 취업 가이드를 받는데다 업계에 내 존재를 알릴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뿌듯해 했다.

◆독 아니면 약=“요리의 세계가 이렇게 냉정하고 혹독하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더 강해져서 저도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ID smile8882) QTV의 화제작 ‘에드워드 권의 예스셰프’는 12명의 도전자가 ‘제2의 에드워드 권’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을 담는다.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정도의 꾸지람은 애교다. 우승을 위해서라면 “바보, 멍충이”라고 불리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청자 역시 욕설을 퍼붓는 에드워드 권에게 “도전자들을 너무 신사적으로 대해 준다”(ID chaduri)며 더 강한 채찍을 요구하기도 한다.

‘오디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만드는 것은 참가자들의 승부욕과 심사위원의 까칠한 심사평. 일찍이 서구 리얼리티쇼에서 자리 잡은 공식이다. ▶나와 다름 없는 평범한 출연자가 ▶도전과 고난 속에 미션을 성취하고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보통 영웅’의 신화다. 경쟁자들 간의 질시와 연대를 엿보는 ‘훔쳐보기’의 쾌락도 있다. 출연진은 ‘TV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것’에 동의서를 쓰고, ‘자기 세일’의 전면에 나선다.

◆한국형 리얼리티로 진화=방송사가 ‘리얼리티쇼’를 선호하는 것은 제작비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회당 출연료가 수천 만원대를 오가는 스타를 섭외하기 어려운 케이블 업계는 일찌감치 일반인 대상의 리얼리티쇼를 도입해왔다. ‘러브 인 몰디브’(XTM) 등 ‘짝짓기 리얼리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출연자 상당수가 연예인 지망생으로서 ‘각본 논란’을 불렀다. 이에 비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오디션 리얼리티’는 취업기회 등 구체적인 특전으로 ‘리얼’을 유도한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시즌 1을 공동연출하고 ‘디 에디터스’를 지휘하고 있는 성병수 PD는 “요즘 세대는 일찍이 미국 리얼리티쇼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QTV 이문혁 제작팀장도 “해외 유학 경험자가 상당수라 이들이 경쟁 분위기를 끌고 가는 편”이라고 했다.

해외 리얼리티쇼의 ‘토착화’도 인기 요인이다. 온스타일 이용렬 제작팀장은 “외국 제작사의 방침 그대로 제작한 ‘프런코’조차 한국인이 하니까 개인 경쟁보다 ‘왕따’ 현상이 두드러지는 등 문화적 차이가 배어났다”고 말했다. Mnet의 ‘슈퍼스타K’는 아예 한국적 ‘가족애’로 프로그램을 특화했다. 오디션 자체만큼이나 개인의 ‘인생극장’에 공을 들였고, 결과적으로 “가장 한국화된 리얼리티쇼가 탄생”(tvN 송창의 대표)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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