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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오 "큰 물 경험이 큰 힘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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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진종오가 태릉사격장에서 날카로운 눈매로 과녁을 조준하고 있다. 정영재 기자

뽀얀 피부에 귀티 나는 이목구비, 날카로움을 숨긴 부드러운 눈매.

아테네 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은메달을 따낸 진종오(25.KT)가 지난 2, 3일 태릉사격장에서 열린 육군참모총장기 전국 사격대회에서 50m 권총과 10m 공기권총을 휩쓸며 2관왕에 올랐다. 지난달 17일 귀국한 뒤 여기저기 환영행사와 인터뷰 등에 참가하느라 연습을 거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있게 방아쇠를 당겼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강초현(당시 유성여고)이 다음달 열린 전국체전에서 8위로 결선에 턱걸이한 것과 비교되는 성적이다.

"이제 완전히 자신감을 얻었어요"라고 진종오는 말했다. 2일 50m 권총 결선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그에게 집중됐음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올림픽 결선이라는 '큰물'에서 놀아본 경험이 그를 담대하게 한 것이다.

"방송 카메라가 자꾸 찍으니까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었죠. 그렇지만 이젠 매스컴을 즐기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올림픽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아쉬움뿐이라고 했다. "거기서는 그냥 '아쉽다' 정도였는데, 여기 오니까 '무지 아쉽다'가 됐어요. 잊을 만하면 사람들이 그 얘기를 하니까요." 본선 1위로 결선에 나선 진종오는 일곱발째 어처구니없이 6.9점을 쏴 금메달을 놓쳤다.

경춘선 열차가 서는 강촌역 근처가 그의 집이다. 구곡폭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동남촌두부'라는 조그만 식당이 나온다. 그곳에서는 진종오가 개선한 이후 일주일 내내 잔치가 열렸고, 잔치 뒤끝에 어머니는 몸져누웠다고 한다.

진종오는 올림픽을 통해 여자친구를 잃었고, 대신 수백명의 팬을 얻었다. 여자친구와 사이가 좀 틀어진 상태에서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진종오가 뜨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됐다. 200여명인 인터넷 팬카페 회원은 대부분 여학생이다. 지난 2일 여대생 네명이 처음으로 사격장에 응원왔다.

그의 목표는 당연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떨어진 과제는 다음달 열리는 전국체전이다. 강원도 대표로 출전하는 진종오는 자신의 은메달을 조련한 대표팀 김선일(48)코치와 맞대결을 벌여야 한다. 대구백화점 감독인 김 코치는 지난해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국가대표에서 사퇴했지만 아직도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다.

김 코치가 구수한 대구 억양으로 말했다. "니하고 붙으면 내가 이길낀데." 진종오가 말을 받았다. "글쎄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글.사진=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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