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경쟁원리 증발된 휴대폰 합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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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는 '윈윈게임' 으로 볼 수 있다. 빅딜은 코오롱측의 자금난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SK.포철.코오롱이 모두 이익을 본 셈이다.

코오롱은 1조원의 자금을 수혈받았고 SK와 포철은 주식 교환을 통해 통신시장의 강자로 발돋움하게 됐다. 그러나 이 전격적인 빅딜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소비자에 대한 배려라는 두가지의 큰 원칙이 증발됐다.

노태우 정부는 '이동통신 분야에 경쟁원리를 도입한다' 며 제2이동통신을 입찰에 붙였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후보는 고(故)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을 제2이동통신에서 손떼게 하고, 대신 한국이동통신을 SK에 넘겨주었다.

불과 7년 전의 일로 나라 전체가 시끌벅쩍했었다. 이번 SK.신세기의 합병선언은 SK가 양쪽을 거머쥐게 돼 과거의 논쟁과 진통을 무색케 한다. 시장점유율 56%의 거대기업이 탄생하면서 '경쟁원리' 라는 정책목표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동통신업계가 과잉투자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로선 그동안 경쟁 덕분에 여러가지 혜택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 SK.신세기가 계속 고객에게 '자선' 을 베풀지, 아니면 독점이익을 추구할지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신업체의 흡수합병은 세계적인 조류다.

그러나 보다폰(영국)과 에어터치(미국)의 합병이나 미국 MCI월드콤의 스프린트사 인수 등은 공룡기업인 AT&T나 벨 애틀란틱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지, 시장 독점을 노린 것은 아니다.

독일 만네스만의 경우 경쟁원칙과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1천억달러 이상을 제시한 보다폰의 합병 제의를 거부하기도 했다.

경쟁원리를 무시한 결정은 뒷탈을 낳을 수 있다. 경쟁의 원칙과 통신업계 구조조정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공정거래위와 정보통신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 지 궁금하다.

이철호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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