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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구세군 강성환 서기장관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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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이곳 저곳에 세워지고 있다.백화점 건물 전체가 산타클로스 선물 보따리로 장식되고 호텔 정원의 나무들은 은빛 금빛 꼬마전구들로 지상의 별로 탈바꿈했다.올 겨울 도시에는 꾀나 인색했던 첫눈도 내렸다.

그러면 다 됐는가? 세기말 세모의 풍경은.시린 콘크리트 바닥 신문 한 장에 고단한 등을 누이는 거덜난 아빠.아무 것도 모르는 채 행인들을 쳐다보기에 즐겁기 만한 꼬마 아들의 죄없는 눈동자도 있는 노숙의 풍경은 지하로,우리 양심의 시선에서 사라져야만 하는가.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내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는가.”하나님은 이런 풍경을 가장 보기 좋아한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양심의 시선이 굳이 외면하려고만 드는 불쌍한 우리 골육,이웃들.그들을 돕고 섬기라는 확성기의 외침과 종소리의 구세군 자선냄비가 있어 세모 거리의 양심을 일깨우고 있다.

30여 년 간 추운 거리에서 자선냄비를 같이 지켜온 구세군 강성환(姜聲煥·60)서기장관·이정옥(李正玉·55)여성사업서기관 부부를 광화문 거리에서 만났다.남편은 확성기로,아내는 종을 치며 우리들 마음 속에 사랑과 자선을 심고 있었다.서기장관은 구세군 최고지도자인 사령관 바로 밑에서 행정·조직·사무를 총괄하는 직책이다.

-냄비 곁에 신용카드 결제기가 있군요.새로운 풍경입니다.모금은 잘됩니까.

"올해 모금 목표액은 14억5천만원이고 전국 시·군·구·읍 1백49개소에 자선냄비를 설치했습니다.자원봉사자 3만여 명이 지난 3일부터 24일까지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아무래도 실직자·노숙자가 우리 모금의 가장 큰 화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추운 거리에서 스스로 모금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 중 그런 분들이 많아요.지난해 자선냄비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으니 이제 자신도 봉사하겠다고요.

그렇지만 노숙자들이 모금하는데 찾아와 기왕 우리를 도울 바에 당장 냄비를 열어 돈을 달라고 할 때는 참 난감해요.술에 취한 분들이 그렇게 승강이를 벌이다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너무 안타까워요.모금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당장 열어서 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우리 호주머니에 그들에게 쥐어 줄 자장면 값도 없을 때 정말 가슴 아픕니다.그분들 말대로 즉시 돕는 게 자선냄비의 뜻인데…."

-자선냄비는 언제부터 거리에 걸리기 시작했나요.왜 하필‘냄비’인지도 궁금합니다.

"자선냄비는 돈을 모으는 통이 아니라 원래 죽을 펄펄 끓여 춥고 배고픈 자의 마음과 배를 녹이고 채워주던 솥이었습니다.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 젊은 구세군 여사관이 춥고 배고픈 자에게 거리에서 따뜻한 수프를 끓여주면서 부터지요.그런데 그해 12월 가까운 항구에서 파선한 승객들 수백명이 한꺼번에 갑자기 모이면서 음식이 바닥나고 돈도 떨어지자 그 솥에다 이렇게 써붙이고 외쳤답니다.“이 사랑의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지금 이 시각 1백5개국의 추운 거리에 국솥이가 걸려 우리들의 이웃 사랑을 끓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28년 시작돼 일본 총독부가 허가하지 않았던 일제 말 몇년을 제외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았지요.6·25 때는 이 냄비에 직접 죽을 쑤어 피난민과 전쟁고아들을 구제하기도 했고요.첫해 모금액이 8백48원67전에서 84년엔 1억을 넘었고 올해는 14억5천만원을 목표로 삼을 정도로 해마다 꾸준히 늘었습니다.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친 지난 2년 간에도 자선냄비는 불어났어요,자선냄비는 이제 우리 사회에 사랑 심기 운동으로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봅니다."

-서기장관 부부께서는 30여 년 넘게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종을 흔들고 계시는데 처음 나설 때 어땠습니까.

"67년 신도로서 담임 사관의 명을 받아 대구에서 첫 모금에 나섰지요.원래 구세군 집안이라서 당당하게 모금할 줄 알았는데 왠걸요.지나가는 사람 가운데는 멀쩡한 젊은이가 구걸한다며 곱지않은 시선도 있었거든요.차라리 교회청소나 할걸 괜히 나왔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당시만 해도 공적인 모금 활동이 참 드문 시대였거든요."

-언제부터 부부가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까.

"신학대학시절 같이 만났습니다.장로교 신학대를 졸업하고 결혼 후 함께 구세군사관학교에 입학,71년 겨울에 서울의 거리로 나섰습니다.다른 사람하고 한 조가 됐을 때는 당당했는데 부부가 함께 하려니 무척 쑥스럽더군요.신학대 졸업하고 목사가 된 동기생들이 저 부부는 서울에 가서 사관학교도 가고 출세했는 줄 알았는데 추운 거리에서 종이나 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것 같기도 했지요.

특히 외투도 못 걸치고 맨 종아리에 바들바들 떨며 종을 치는 아내를 바라보기가 애처로웠어요.그래서 아내를 잠깐잠깐 근처 은행에서 몸을 녹이고 오게 했다가 감독 사관에게 혼이 난 적도 있고요."

-모금에 얽힌 애환도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지금까지 어떤 기부자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냄비에 돈을 넣는 사람들의 모든 손이 다 기억에 남습니다.혹시 돈이 보일세라 손을 꽉 쥐고 넣는 손,하얀 봉투에 돈을 넣어 넣는 손등이 아름답습니다.왼 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베푸는 마음이 얼마나 숭고합니까.‘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고 외치며 좋은 일 한다고 떠드는 우리들의 마음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자선 냄비는 익명의 돈을 모으는 것이 특징입니다.적은 돈이라도 사랑의 순수한 정신을 높이 사는 것이지요."

-쭉 지켜보시면서 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더 흔쾌히 모금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사회생활에 여유를 가진 사람들입니까,아니면 삶이 고단한 사람들입니까.

"남을 돕는 데는 못살고 잘살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고가 없습니다.다 자신의 마음 씀씀이에 따라 처지에 따라 제각각 입니다.그리고 얼마 넣는지 모르게 안 보이려고 애쓰며 넣은 돈이 나중에 열어보면 대부분 큰 돈입니다.어느 해인가 서울의 자선냄비 수십 곳에 하얀 봉투에 고액의 수표가 한 장씩 들어있었어요.한 은행에서 발행한 일련 번호로요.그분의 수표번호를 추적해 고맙다는 인사말씀을 드리러 갔더니 무척 난감해하시더군요.아무도 모르게 하루 종일 서울 시내 자선 냄비를 돌며 전한 그 마음이 알려졌으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있는 돈을 넣고 가다 돌아서서 돈을 거슬러 달라는 사람들이 하루에 한 두 명은 꼭 있어요.처음에 그런 사람들이 얄미웠어요.그러나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넣고 돌아서 보니 차비가 없어 거슬러 달라는 그 순수한 마음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종교나 사회 단체와 더 좋은 모금 장소를 놓고 자리 다툼 한적은 없는지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 홀로 구원받기를 원치않습니다.이웃과 같이 나누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그러니 다른 종교나 단체와 다툼이 있을 수 없지요.옆에 다른 교회가 있으면 우리는 충분히 떨어져 교회를 세웁니다.

그런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준 한 스님이 생각납니다.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모금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우리한테 바짝 붙어서 모금함을 놓고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는 것이었어요.우리가 자리를 옮기고 싶어도 그 목이 하도 좋아 옮길 수도 없었죠.알아서 옮겨주기를 바랐는데 우리와 계속 같이 하는 겁니다.우리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철수할 찰나 스님이 급히 자기 모금함을 열더니 돈을 다 우리 냄비에 넣어요.자리의 기득권을 주장한 내가 왜 그리 작아보이고 하루종일 불자들의 자비를 받아 우리를 도운 그 스님이 얼마나 커보였는지(너털웃음)."

-어때 신용카드로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까.

"카드는 1천원부터 받고 있는데 카드를 꺼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적은 돈,익명성이라는 자선냄비의 취지와 특성에 아직 카드는 안 맞는 것 같더군요.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콘서트 등 이벤트도 벌이고 전화자동응답(ARS)모금도 하고 무인 자선냄비도 설치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전통방법’을 고수하기로 했습니다.추위에 함께 떨며 시민들에게 사랑을 심는 냄비가 되기 위해서이지요.돈의 많고 적음보다 사람들 가슴가슴에 사랑을 심는 운동이 더욱 중요하지 않습니까."

-구세군은 연말에만 열심히 모금하고 평소에는 거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평소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자선냄비와는 달리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해서 그렇지 우리 구세군은 항시 이웃의 아픔을 구제하는 거국적인 자원봉사 특공대입니다.삼풍백화점이나 대구 지하철 붕괴 사건 등 긴급사태 때 가장 잘 조직된 구호대로 투입되고 있답니다.전국 5백여 영문및 구호사업체에서 매맞는 아내·미혼모·윤락녀·노숙자 등 불우 이웃들의 구호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우리는 신앙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더불어 사는 조직입니다.마음은 하나님께,손길은 이웃에게 항상 가 있습니다.자선 냄비는 시민의 것입니다.여러분,이 추운 날 우리 서로 사랑의 불길을 피웁시다.모두 다 함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만난사람= 이경철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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