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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97> 싱글 몰트 위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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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섞어 폭탄주로 마시기에 부적절한 위스키’. 국내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에 대해 흔히 하는 말입니다. 달리 보면 이 위스키가 다른 술과 함부로 섞기 어려운 풍미를 지녔고, 그 자체로 즐길 때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인 것도 같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3년 이상 오크통에 담겨 숙성해야 하는 스카치 위스키. 그 원조 격인 싱글 몰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싱글 몰트의 성지’로 불리는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 최근 다녀왔습니다.

김성탁 기자

인천공항에서 영국 런던, 이어 국내선 비행기로 스코틀랜드 애버딘까지 20시간. 차로 한 시간을 더 달려 스페이강 유역에 도착했다. 스페이사이드(Speyside)라고 부르는 이 지역에는 맥캘란·글렌피딕·글렌리벳 같은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가 밀집해 있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끼나 싶더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한국의 가을보다 훨씬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다 다시 햇살이 비친다. 해발 600m에 있는 맥캘란 증류소의 한 직원은 “그게 바로 스코틀랜드”라고 말했다.

1 스페인 헤레즈 지역의 공장에서 맥캘란 위스키 숙성에 쓸 오크통을 만들고 있다. 참나무 조각을 쇠 굴레로 한 쪽만 결합해 내부를 연기에 그을린 뒤 뜨거운 불로 구우면서 쇠줄로 밑을 조이면 불룩한 원통이 된다. 2 스페이산 셰리 와인을 숙성했던 오크통. 3 미국 버번 위스키를 담았던 오크통의 내부.

‘몰트 위스키’는 보리의 싹을 틔운 맥아로 만든 위스키를 가리킨다. ‘싱글 몰트’는 한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만을 병에 담았다는 뜻.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에 보리가 아닌 다른 곡물로 만든 ‘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것이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섬세하고 복잡한 맛과 향을 지녔다.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비싸다. 17~18년산의 경우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고급 위스키를 만드는 데 왜 보리를 썼을까.

물길 따라 들어선 증류소

맥캘란 증류소에는 보리밭이 딸려 있었다. 맥캘란의 데이비드 콕스 이사는 “보리는 위스키를 만드는 데 이상적인 곡물”이라고 소개했다. 보리의 거친 껍질이 스코틀랜드의 춥고 습한 기후로부터 알맹이를 보호해 준다. 위스키를 만들려면 높은 도수의 알코올이 필요한데, 보리에는 전분이 많다. 이것이 당분으로 변해 충분한 도수의 알코올을 낳는다. 스코틀랜드 토양도 보리 재배에 알맞다.

위스키 제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요소는 물. 이곳 증류소들은 말 그대로 고원지대인 ‘하이랜드’를 가로질러 북해로 흐르는 스페이강 옆에서 천연 지하수를 끌어올려 쓴다. 산과 계곡에서 흘러든 빗물이 암반을 지나며 다양한 무기질을 함유하게 되는데, 이런 성분이 제조 과정에서 맛을 좋게 하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스페이사이드에 가장 많은 싱글 몰트 증류소가 몰려 있는 것도 좋은 수질 때문이라고 한다.

발아·건조·발효·증류

보리가 원액(주정·酒精)으로 변하기까지는 몇 단계를 거친다. 맥캘란에 맥아를 공급하는 탬두 증류소. 겉보리를 미지근한 물에 이틀 동안 담가 잠을 깨우고 있었다. 이어 20도로 온도를 맞추고 5일간 물을 뿌리면 보리 속의 탄수화물이 분해되면서 발아한다. 위스키 제조에는 이 단계의 맥아가 필요하기 때문에 발아를 중지시키려고 가마에서 말린다.

예전엔 석탄이 부족해 가열 원료로 이탄(피트)을 많이 썼다. 이끼나 낙엽, 작은 나무가 썩어 탄이 된 것인데, 스코틀랜드 초원에 널려 있다. 몰트 위스키 중 찻잎을 태운 듯한 피트향이 나는 제품은 이탄을 사용해 말렸기 때문이다. 요즘도 아일레이(Islay)섬에서 나오는 ‘라프로익’ 같은 제품은 이런 방식으로 만든다.

증류소는 맥아를 가져다 찧은 뒤 뜨거운 물과 섞으면서 기계로 휘저어 맥아즙을 추출한다. 이어 ‘워시 백’이라고 부르는 통으로 옮겨 이스트를 넣는데, 2~3일이 지나면 발효된다. 증류소 내부의 워시 백 안에는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무렵 알코올 도수는 맥주와 비슷한 8도가량이다.

다음은 증류. 맥캘란은 구리로 만든 양파 모양의 증류기를 쓴다. 증류기를 구리로 만드는 것은 열 전도율이 좋고 원하는 모양대로 가공하기 쉽기 때문이다. 구리가 정화 기능을 갖고 있어 잡냄새를 없애는 효과도 있다.

발효된 맥아즙을 증류기에 넣고 가열하면 알코올 성분이 증기로 변해 위로 올라간다. 증류기 내부의 구불구불한 냉각기를 통과하면서 위스키 원액으로 변한다. 이런 증류 과정을 두 번 거친다. 맥캘란은 원액 중 가장 품질이 좋은 16%만을 실제 위스키 제조에 사용한다. 나머지는 버리거나 증류 과정에 재활용한다.

증류기에서 막 생산돼 나온 원액은 투명했다. 마셔보니 알코올 도수(72도)가 높아 짜릿했지만 곡물 증류주 특유의 구수한 맛이 났다. 약간 상큼한 향이 느껴졌다. 데이비드 콕스 이사는 “싱글 몰트 위스키에서 나는 맛과 향은 생과일·초콜릿·사과·양념류·바닐라·건조 과일·감귤류·꽃 등이 대표적”이라며 “이 중 생과일과 사과, 꽃 향기 등은 원액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오크통 숙성 과정에서 생겨난다.

오크통의 비밀

맥캘란은 69.8도로 도수를 조절한 원액을 오크통에 담는다. 전 세계 참나무 600여 종 가운데 방수 기능이 있는 20종만을 술 숙성용으로 쓸 수 있다. 스페인산과 북미산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주로 스페인 북서부의 참나무로 만든 ‘셰리(Sherry) 오크통’을 쓴다. 셰리는 스페인 헤레즈 지역의 청포도로 와인을 만든 뒤 브랜디를 섞어 주정을 강화한 와인이다. 과거 영국인이 식전주로 즐겼으나 지금은 생산량이 미미하다. 요즘은 오크통 숙성용으로 일부러 재배한다. 셰리 와인을 2~3년간 담았던 통에 위스키를 넣는다. 스코틀랜드로 들어오는 셰리 오크통의 65%가 이 회사 차지다. 미국 버번 위스키를 담았던 오크통과 북미산 새 오크통도 일부 사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콕스 이사는 “맥캘란 위스키의 향과 맛의 60%는 오크통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오크통을 쓰느냐에 따라 위스키 자체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원액을 넣기 전 상태의 셰리 오크통과 버번 오크통, 북미산 새 오크통의 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아봤다. 싱글 몰트를 마실 때 혀와 코에서 느껴지는 다채로운 향취가 피어올랐다. 셰리는 진한 과일향이, 버번은 상큼한 향기가 특색이었다. 증류소 관계자는 “북미산 오크통을 쓰면 바닐라와 꽃 향기가 강해진다”고 귀띔했다.

투명한 원액이 호박색이나 구릿빛의 위스키로 변하는 것도 오크통의 영향이다. 셰리 오크통에 오래 보관한 제품일수록 진한 갈색에 가까워진다.

오크통은 내부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스페인 현지 공장에서 참나무 조각을 쇠 굴레로 한쪽만 결합한 뒤 내부에 불을 지펴 연기에 그을린다. 참나무 진액을 나오게 해 나무 조각 사이의 틈을 메우면서 타닌( 떫은 성분)은 줄이고 코코넛향 등 다양한 성분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참나무는 최소 75년 이상 된 것이어야 오크통 제작에 쓸 만하다. 베어낸 나무는 2년 동안 자연 건조를 한다. 오크통이 스코틀랜드로 오기까지 5~6년이 걸린다.

맥캘란은 원액을 담은 오크통을 저장소에 최소 8년 이상 놓아둔다. 이곳 저장소에는 ‘위스키가 숙면 중이니 조용히 해 달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다. 저장소의 벽을 돌로 쌓고 바닥에 자갈을 깔았다. 안내를 맡은 관계자는 “전통 방식대로 건물을 지었는데 냉·난방을 따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크통에 담긴 원액은 스코틀랜드의 선선한 기후 속에 세월을 나면서 마술처럼 위스키로 변한다. 불이나 연기에 접한 참나무의 타닌이나 셰리 와인을 품었던 오크통과 만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만의 숙성법을 통해서다.

숙성기간 동안 위스키는 매년 2%정도씩 증발한다.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하는데, 스페이사이드에서만 매년 600만 병 분량에 달한다.

결혼시키듯 배합해 병에 담아

각 오크통에서 숙성된 위스키는 맛과 향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연산별 제품을 내놓으려면 여러 오크통을 섞어 일정한 풍미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신제품 개발도 이 과정에서 이뤄진다. 이곳 사람들은 몰트 위스키를 섞어 원하는 맛을 내는 과정을 결혼에 빗대어 ‘매링(marrying)’이라고 표현했다. 데이비드 콕스 이사는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원액이 단단한 품질을 갖지 않으면 오크통에 압도당하고 만다”며 “오크통과 원액이 조화롭게 영향을 미쳐야 좋은 싱글 몰트 위스키가 나온다”고 말했다.

맥캘란 싱글 몰트 위스키 어떻게 만드나

1 보리를 물에 담가 불린 뒤 5일간 휘저으면 싹이 튼다. 가마에서 건조시킬 때 이탄을 연료로 쓰면 피트 향이 포함된 위스키가 만들어진다.

2 맥아에 따뜻한 물과 이스트를 첨가해 발효시키는 통. 이때 알코올 도수는 맥주와 비슷한 8도 정도다.

3 양파 모양의 증류기에서 두 차례 끓여 알코올을 추출한다. 맥캘란은 스페이사이드에서 가장 작은 증류기를 쓰는데, 생산량은 적지만 원액에 섬세한 풍미가 담긴다.

4 투명한 원액은 부드러운 질감에 생과일이나 꽃 향기가 배어 있다. 원액은 싱글 몰트 품질의 40%가량을 좌우한다.

5 쉐리 와인이나 버번 위스키를 숙성했던 오크통에 원액을 담아 장기간 보관한다. 이 과정에서 위스키는 황금빛 색상과 다양한 풍미를 지니게 된다.

6 각 오크통에 담긴 위스키를 배합해 연산별 제품을 만든다. 데이비드 콕스 맥캘란 ‘화인앤레어’ 담당 이사가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 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위키(wiki) 기반의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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