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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서울 시간여행] 2. 봉천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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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림동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로 꼽히는 봉천동 일대가 초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2동 봉천2-2 재개발구역. 판자촌이 있던 자리엔 24층 높이의 동아아파트(2천90가구)가 위용을 자랑한다. 지난 8월 완공된 아파트 곳곳에서 입주를 위한 이삿짐 차량이 눈에 띈다.

인근 대신부동산 김용채(金容彩.64)사장은 "전체 2천90가구중 43.33평짜리 아파트는 대부분 방배.서초.강남.분당에서 온 중산층 사람들로 입주가 거의 끝났다" 며 "반면 기존 달동네 사람들이 입주하려던 15평 임대아파트와 26평 아파트는 잔금을 치르지 못해 절반도 입주를 못했다" 고 말했다.

달동네의 형성과 변천과정은 성장과 개발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서울의 힌 풍속도를 이룬다.

◇ 8평짜리 판자집에 방이 세칸〓이곳에 달동네가 형성된 것은 지난 65년 7월의 한강 대홍수가 발단이다. 당시 한강 백사장과 제방 주변에는 무작정 상경한 농촌 빈민들의 천막촌이 즐비했었다.

홍수 직후 서울시는 '불도저' 로 불리던 김현옥(金玄玉.66년3월~70년 4월 재임)시장의 지휘로 봉천3.5.6.9동 일대 국유 임야에 대단위 정착단지를 조성했다. 여기에 한강 중지도와 이촌동 일대 주민 2천여명이 이주해 달동네가 만들어졌다.

최근 '관악의 역사를 찾아서' 를 출간한 향토사학자 김영헌(金榮憲)씨는 "병풍같던 산자락을 깎은 자리에 횟가루를 뿌려 8평씩 땅을 구획했다. 관급자재로 지은 방 세칸에 세입자까지 받았다" 고 회고했다.

당시 수재민 3백여명을 인솔하고 이주했던 김갑렬(金甲烈.62.관악문화원 이사)씨는 "아침마다 공동화장실 앞에는 수백m씩 줄을 섰지요. 불이 나도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집이 다 타버리기 일쑤였어요. " 라고 말했다.

달동네 주민들은 막노동꾼.파출부 등 개발시대 저임 노동력을 공급했다. 봉천5동 현대시장 주변에는 새벽마다 인력시장이 섰다. 구세군교회.성결교회 등 구호.자선단체들도 이 지역으로 찾아들었다.

◇ 초고층 개발과 '딱지' 〓달동네의 입지는 7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서서히 변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입주.남부순환로 개통에 이어 84년에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봉천동의 개발가능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92년 봉천2-2구역을 시작으로 봉천.신림동 일대 14개 구역의 사업계획이 결정되면서 재개발 붐이 급속도로 일었다.

2만8천가구 1만3천여채의 불량 주택을 헐고 2천년대 초반까지 2만6천여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대단위 건설계획이 세워졌다.

현재 4천여가구가 지어졌다. 서울시 전체로는 이후 3백6개 달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현재 사업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이 지역엔 투기를 노린 복부인과 부동산 업자들의 달동네 출입이 잦았고 복덩방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재개발과 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수많은 달동네 주민들을 울린 '딱지(전매권)' 다.

주민 金갑렬씨는 "65년에도 8평짜리 판자촌 입주권을 되파는 딱지(당시 2만원선에 거래)가 나돌았다" 면서 "딱지 값은 95년 한때 8천만원까지 올라갔지만 원주민의 90%는 헐값에 팔고 달동네를 떠났다" 고 아쉬워 했다.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주민의 계층 분포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일례로 달동네가 밀집된 관악갑구는 당시 야당으로 3선이던 한광옥(韓光玉.현 청와대 비서실장)씨의 아성이었지만 달동네 철거.이주 후 실시된 96년 총선에서 韓씨는 여당후보에 패했다. 재개발로 떠나버린 3만여명중 60~70%가 호남출신이었던 게 패인으로 분석됐다.

◇ 파생된 문제들〓재개발로 밀려난 달동네 원주민들의 주거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도시빈민연구소 하성규(河成圭.중앙대 교수)소장은 "서울시의 불량주택 재개발 정책은 해당 지역의 물리적인 여건 개선에만 치중하고 있다" 며 "돈이 없어 달동네에서 조차 좇겨난 원주민들은 쪽방.비닐하우스촌.시외곽 달동네로 이주해 또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지나친 고층.고밀 개발로 교통.경관문제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봉천동은 용적률을 2백%로 제한한 '서울시 주택재개발 기본계획' (98년 마련)이 수립되기 전에 사업계획이 결정돼 용적율이 최고 3백34%에 이른다.

승용차를 가진 중산층 인구가 좁은 지역에 밀집되면 교통문제가 심각해게 마련이다. 봉천동 주변 관악로와 인접 남부순환로 일대는 급증하는 차량들로 수시로 체증을 빚고 있다.

하늘을 받든다는 이름의 이곳 봉천동 고지대는 고층 아파트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망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봉천2-2구역의 경우 해발 95m에 24층 아파트를 짓다보니 1백57m 까지 아파트가 치솟았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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