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이종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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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내 나이 어느덧 63세. 환갑이 지나서야 철이 드는지 노모의 지극한 사랑을 실감하곤 한다.

얼마전 어머니의 83세 생신을 치렀다.

어머니는 대전에 사는 막내가 모시고 있었기에 전날 나는 아내, 큰 자부와 막내 자부와 함께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저녁때가 되니 온 자손들이 모여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고 그 사이에 사촌들 내외까지 방문해서 '큰 어머님 오래오래 사시라' 고 축하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새벽부터 한상 가득 준비한 생일상을 차려놓고 온 가족들이 축하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차려놓은 음식에는 관심도 없이 큰 손주 며느리, 막내 손주 며느리 손을 잡아주며 '고맙다' '고맙다' 는 말만 계속했다.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자세로 사시는 우리 어머니. 올해까지는 이렇게 건강하신데 내년에도 생신을 치러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메였다.

진천에 있는 회사에서 경비대장으로 일하는 나는 출근을 해야겠기에 "어머님 저 갑니다" 하고 인사하니 어머니는 무슨 봉지 하나를 건네주시며 "가다가 시장하면 들라" 고 하셨다.

차 안에서 봉지를 열어보니 과일과 떡, 그리고 그 사이에 꼬깃꼬깃 접어놓은 만원짜리 2장이 나왔다.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환갑이 넘은 자식에게도 길조심 차조심하고,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어야 하며, 몸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라고 마치 강가에 세워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염려하고 기도해 주는 어머니.

아무쪼록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만 간절히 기도하면서 팔순이 넘도록 자식을 위해 정성을 베푸시는 어머니를 아직 내 곁에 모시고 살 수 있다는 데에 진한 행복감을 느꼈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이종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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