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마쓰시타, 메모리카드 놓고 2파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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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80년대 중반 비디오 테이프의 기준규격을 놓고 '베타(β)냐 VHS냐' 의 일대 혈전을 벌였던 일본의 소니와 마쓰시타(松下)가 이번에는 플래시 메모리(메모리 카드) 규격을 두고 2차전을 치르고 있다.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지는 16일자 최신호에서 "연간 1백30억달러(약 15조원) 규모의 플래시 메모리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일 전자업계 최대 라이벌인 소니와 마쓰시타가 세기말 최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고 보도했다.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는 신용카드의 절반 크기로 전원이 꺼져도 기억된 내용이 지워지지 않는 반도체. 디지털 카메라.MP3 플레이어.PC.휴대폰 등 디지털 제품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데이터를 기억한 플래시 메모리를 꺼내 PC 안에 삽입하면 프린트.e메일 전송이 가능할 정도로 호환성도 진전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소니와 마쓰시타가 서로 "독자 규격의 메모리 카드를 고수할 것" 이라고 선언하고 나서면서 일본 플래시 메모리 시장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소니가 자체 브랜드 '메모리 스틱' 을 선보이며 내년초에는 자체 안전 메모리 카드(일명 스마트 카드)를 시판할 것으로 전해지자 마쓰시타도 최근 고유 규격인 'SD메모리 카드' 출시를 발표하며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다른 규격을 고수하게 되면 인식.명령체계는 물론 크기마저 달라 호환성이 없다.

승부는 전자제품업체 포섭에 달려있다고 판단한 소니는 이미 소비자 관련 전자제품 주요 업체 25개사로 하여금 '메모리 스틱' 과 공용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로 제휴를 맺었다.

또 미래형 자동차를 개발하는 폭스바겐과 소프트웨어 업체인 아도베(Adobe)와의 협정도 체결했다. 반면 마쓰시타는 현재 플래시 메모리 메이커의 선두주자인 도시바 및 샌디스크와 동맹관계를 맺고 '반 소니' 세력 규합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격전쟁' 이 과거 비디오테이프를 둘러싼 구원(舊怨)에서 비롯된 만큼 당분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겠지만 일방적으로 패했을 때의 희생이 너무 큰 만큼 어느 시점에서는 상호 표준화에 절충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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