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중재안 확정] 노사 눈치보며 봉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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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사 갈등을 빚어온 노동법 개정 문제가 정부의 최종안이 확정됨에 따라 이제 국회라는 마지막 관문 통과를 남겨두게 됐다.

물론 노동계와 재계의 합의가 없이 결정된 것이어서 이들의 반발에 따라 처리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더라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와 재계 양쪽을 모두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이 이를 처리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때 이견을 좁히며 갈등 해소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이번 사태는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던 '유급 전임자 상한제' 에 막혀 아직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노사정위는 노사 양측의 정면충돌을 막기 위해 이 문제의 처리를 법 개정 이후로 미루는 미봉책을 짜냈다.

당초 정부는 상한제와 관련, '99년 말 수준을 기준으로 규모별로 적정선을 정한다' 고 명시하려 했으나 재계의 반발을 의식해 이 부분을 삭제했다.

대신 이 조항의 대통령령 시행을 2002년 1월로 미뤄 노동계를 무마했다.

이같은 노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임자 수의 상한선을 정하는 문제는 유보한 채 ▶전임자 임금지급▶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단체협상 이행 보장 등을 정리하는 선에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노동계와 재계에는 '통보' 형식을 거친 뒤 확정안을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법 문제가 표류하는 것을 무작정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 이라고 연내 처리 의사를 분명히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1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이상룡(李相龍)노동부장관에게 "조속히 처리하라" 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정부 방침은 어차피 노사가 이번 최종안에 대해 합의할 수 없는 데다 양측이 체면을 구기면서 공식적으로 수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상황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양측이 1백% 만족할 수 없지만 마지못해 '양해' 하는 모양새를 갖춰줌으로써 명분을 살려주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공을 넘겨받을 정치권은 이 법안의 처리에 상당히 미온적이다.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재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데다 노동계가 오히려 투쟁강도를 높일 수 있어 섣불리 추진하다간 잃는 것이 너무 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에서도 논란만 거듭하다 개정안 통과가 상당기간 미뤄지거나 없었던 일로 될 공산도 없지 않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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