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거짓말은 버리고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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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고대 페르시아의 소년들은 다섯살에서 스무살이 될 때까지 장장 15년 동안 세가지의 교육만 받았다.

말 타기와 활 쏘기, 진실을 말하기다.

오늘날의 지도상으로 중동에서 발칸과 이탈리아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놓고 그리스와 패권 경쟁을 벌이던 페르시아 제국이 소년들에게 어릴 때부터 싸움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젊은 전사(戰士)들이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하고 못하고에 페르시아가 주도하는 국제질서(Pax Persiana)의 성패가 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끊임없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거짓말 아닌 진실을 말하는 훈련이 전쟁 기술과 함께 청소년들의 3대 교육과정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전성기 페르시아 사회의 높은 도덕성을 반영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거짓이 아닌 진실이 지배하는 사회가 나라의 부강을 보장한다는 페르시아 지도층의 비전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로부터 2천5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와 비교하면 문명과 인지(人智)는 하늘 높이 이상으로 진보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닐 터이다.

그러나 거짓과 진실의 문제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회는 마치 상류사회와 권력층의 거짓말 경연장이 된 것 같다.

옷 로비 사건에 주역으로 등장하는 여성들 중 적어도 몇명은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법과 질서 유지를 책임지는 자리인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차례로 지낸 사람은 그 자리를 이용해 자신과 아내를 위해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청와대 법무비사관으로 사정(司正)문제에 관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위치에 있던 사람은 옷 로비에 관한 사직동팀의 보고서를 고쳐 쓰고 유출하고 사건의 진상 중에서 그의 학교 선배인 검찰총장의 개입 부분에 관해 대통령에게 거짓보고를 한 의혹이 짙다.

옷 로비 사건의 본질은 더이상 실패한 로비가 아니다.

사건의 본질은 관련자들에 의한 은폐.축소와 검찰의 윗사람 봐주기 수사 의혹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박주선(朴柱宣.전 법무비서관).최광식(崔光植.사직동팀 책임자) 세사람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에서 "하늘의 그물은 크다.

엉성해도 바르지 못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天網恢恢 疎而不失)" 고 말했다.

민심이 천심(天心)이면 하늘의 그물은 국민의 시선일 것이다.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경구(警句)도 이런 배경에서 진리다.

여론은 金.朴 두사람의 말을 불신하고, 그들에 대한 불신은 정권의 신뢰 위기로 발전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1922년 '개벽(開闢)' 에 발표한 민족 개조론에서 조선인은 외국인들로부터 거짓말쟁이라는 실망스러운 평을 듣는다면서 민족 개조의 내용 첫머리에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을 없애자고 주창했다.

그때 벌써 한국인의 거짓말이 걱정스러운 수준의 것이었다면 '거짓말' 은 불치의 한국병인가.

거짓말이 한국병의 증상이라면 거짓말 하는 사회 지도층 사람들의 책임은 덜어진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이 땅의 거짓말 문화가 그들의 거짓말을 낳는 게 아니라 지도층이 거짓말을 하고도 무사하고, 거짓말이 보신(保身)과 출세의 수단이 되기 때문에 거짓말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해가 한번 바뀌어도 사람들은 각오를 새로 다진다.

하물며 세기와 밀레니엄이 바뀐다.

우리의 악습 중에서 거짓말부터 과거의 쓰레기장에 버리고 가야겠다.

그러자면 옷 로비 관련자들을 '하늘의 그물' 에 걸어 노자의 말이 지금도 옳음을 밝혀 권력자들의 거짓말엔 반드시 패가망신의 대가가 따른다는 추상같은 교훈을 남겨야 한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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