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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임상수 감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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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난 95년 라스 폰 트리에를 비롯한 일단의 덴마크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를 위한 '순수 서약' 을 했다.이른바 '도그마 95' .여기에 담긴 열 가지 계명은 세트촬영이나 특수조명을 금한다거나, 카메라는 꼭 들고 찍는다 등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열거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몇 년 안 가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특별상을 받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셀레브레이션' (4월 국내 개봉)은 '도그마 95' 의 첫 작품. 부권(父權)에 도전하는 장남의 이야기를, 역시 기존 영화의 독단(도그마)에 도전하는 형식미로 포장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 영화계에 '이처럼 '영화적 타성에 대한 저항으로 2000년을 준비하는 신예 감독이 있어 관심을 끈다.'도그마 95' 의 모방처럼 비칠지도 모르지만'

신기술과 저예산, 비(非)스타 기용 등으로 영화계의 '변형문법' 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대단하

다. 지난해 데뷔작으로 풍부한 성(性)담론의 장을 제시했던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의 임상수(37)감독이 그 주인공.

임감독이 내년 4월 개봉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두번째 작품은 '눈물' (영화사 봄 제작).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처음으로 1백% 디지털비디오 작업을 통해 촬영한다는 점이다.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6㎜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이를 키네코 작업(비디오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일)을 통해 일반 극장에 개봉할 계획이다.임감독은 "순제작비를 3억원대로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이동이 자유로워 다양한 앵글을 구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고 밝혔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셀레브레이션' 에서 보듯 이 영화의 약점은 거칠고 희미한 화질. 그러나 바로 이런 점이 오히려 이 영화의 성격과 내용과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임감독이 3년 전부터 구상한 '눈물' 은 서울 영등포 가리봉동의 유흥업소를 떠도는 10대 네 명의 이야기다.임감독은 지난 1년간 이곳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만나 직접 고민을 듣는 치밀함을 보였다.그는 "가출청소년들의 꿈과 좌절을 통해 이 시대 10대들의 성문제를 환기시키겠다" 고 말했다.유사(類似)타큐멘터리를 지향, 꾸밈없는 연기를 '날것' 그대로 풋풋하게 펼칠 인물들을 현재 캐스팅 중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몰고 올 파장. 자칫 청소년들을 상업영화에 끌어들여 대담한 성적 유희를 벌이게 할 경우 청소년보호법에 저촉될 위험성이 많아 임감독은 고문변호사를 두고 수위를 조절해 나갈 계획이다.임감독은 "그런 금기의 영역을 뛰어 넘는 길은 오직 고도의 작품성 뿐" 이라며 의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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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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