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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관 “오바마 정권 초기부터 대화하면 성과 볼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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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호 04면

그레이엄 목사 일행이 관람한 아리랑 공연. 내용 중 3분의 1일이 북·중 관계, 중국에 대한 찬양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한다. 지난 5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에 맞춰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인요한 교수 제공

10월 13일 낮 12시쯤 평양 순안공항. 미국의 구호단체 ‘사마리탄스 퍼스’의 프랭클린 그레이엄(53) 목사 일행이 전용기 트랩을 내려왔다. 그레이엄 목사는 김일성 주석과 각별했던 빌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미국의 보수 언론, 폭스뉴스 기자도 동행했다. 북한 외무성의 이근 미국국장이 이들을 맞았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 특사와의 만남을 위해 미국 방문(10월 23일~11월 2일)이 예정돼 있던 이 국장은 이때부터 목사 일행의 사흘 체류 일정을 거의 함께했다.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차 함께 방북한 인요한(50) 세브란스병원 국제 진료센터 소장을 29일 만났다. 구한말 선교사 유진 벨의 4대 손인 인 소장은 대북 의료지원 사업을 하며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요한 교수가 전하는 ‘10월 평양에선’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통역으로 도와주러 갔을 뿐”이라며 손사래 치던 그는 북측 인사들이 그레이엄 목사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에 전달코자 한 메시지 정도만 얘기하겠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북한 관리들을 많이 만났던데.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박의춘 외무상,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이근 국장, 뉴욕 차석대사로 복귀할 예정인 한성렬 군축 평화연구소 대리 소장을 만났다.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해 여름에도 방문했는데, 이번엔 종교계 인사들과의 일정은 거의 없었다. 대미 외교 라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 소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이 그레이엄 목사 일행을 통해 미국에 전달하려는 ‘대화 의지’, ‘미소’가 강하게 묻어난다.

-김계관 부상 등이 전한 메시지는 뭔가.
“김 부상은 ‘클린턴 행정부 8년 중 마지막 1년을 남겨두고 양국 관계가 풀어져서 뭔가 해보려다 임기가 끝났다. 부시 행정부 때도 7년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해에 대화가 시작됐지만 원점으로 돌아갔다. 오바마 행정부와는 취임 초기부터 협상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6자회담에 대해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인 소장은 박의춘 외상이 “6년간 6자회담을 해봤는데,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직접 대면하자는 것이다. 남조선을 제외시키자는 게 아니고, 당사자끼리 문제를 해결해야 그 다음 일이 풀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설명했다고 한다.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 초청 이후 계속되는 유화 제스처의 일환이다. 지난주 뉴욕 북·미 대화를 앞두고 워싱턴 포스트(27일자)는 사설에서 “핵실험으로 협박한 뒤 유화공세로 이득을 챙긴 김정일 위원장의 사기(Mr. Kim’s scam)를 오바마 행정부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현재 워싱턴 조야의 기류를 드러내는 기사’라고 말한다.

어쨌든 인 소장이 전한 평양의 분위기는 2012년 강성대국 진입, 후계 체계 완성을 위해 ‘대화 국면’으로 돌아섰다는 것이었다. 인 소장은 박의춘·김계관·이근 모두 “핵은 원치 않는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란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레이엄 목사가 전한 메시지는.
“미 행정부의 메시지는 없었다. 목사는 북측에 ‘미국이 현재 북한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경제위기와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온 신경이 가 있기 때문에 미처 신경을 못 쓰고 있는 것’이란 얘기를 했다. ‘미·북 사이에 쌓인 60년 대립을 청산하는 새로운 다리를 놓자’며 여기자들을 석방한 것처럼 68년 나포돼 대동강에 전시돼 있는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돌려주라고 요청했다. 북한은 ‘클린턴 장관이 평양에 와서 얘기하면 협상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아주 만족해했고, ‘부인도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7월 클린턴 장관에 대해 “소학교 여학생, 장마당의 할머니, 전혀 지능도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공격했었다. 그레이엄 목사 일행과 대화에선 내내 깍듯하게 표현했다고 인 소장은 전했다.

폭스뉴스는 ‘온 더 레코드’란 프로그램으로 19일부터 2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평양의 모습을 방송했다. 이 가운데는 김계관 부상의 인터뷰도 있었다. 그레이엄 목사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던 김 부상에게 “미국 사람들은 북한이 미국과 전쟁하려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으니 직접 국민에게 뜻을 전하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인 소장은 평양 거리가 지난해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고 했다. 닭튀김집, 싱가포르 햄버거 체인점이 영업 중이었고, 거리에는 평화자동차가 만든 휘파람·뻐꾸기 같은 차들이 눈에 띄었다는 것. 특히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로 자유롭게 통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은 31일 이집트 투자은행 EFG-헤르메스의 자료를 인용,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석 달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나 9월 현재 10만 대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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