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동 성폭력범 이사 땐 이웃들에 편지로 알려 주겠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8호 05면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의 인터뷰는 10월 29일 서울 계동의 장관 집무실에서 한시간 남짓 진행됐다. 신인섭 기자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인터뷰는 회갑(10월 23일) 인사로 시작했다. 전 장관은 “생일 축하받는 건 기쁜데, 회갑이라니 끔찍하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신종 플루(인플루엔자 A/H1N1) 대책의 총사령관이면서 관련예산이 80조원이 넘는(복지부 소관 30조원) 보건복지 정책의 수장이다. 전 장관은 최근의 심경을 옛말을 빌려 설명했다. “초보 사공은 파도를 무서워하고 노련한 사공은 파도를 즐긴다는 얘기가 있다.

신종 플루·아동성폭력·저출산 삼각파도와 싸우는 전재희

나는 아직 노련한 사공은 아닌 모양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9층의 장관 집무실에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얼마 전까지 조두순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했다. 아동성범죄 문제 역시 복지부 소관이기도 하다.
“정부의 종합대책은 마련돼 있다. 그걸 지속적으로 끝까지 집념을 가지고 추진하느냐가 문제다. 복지부에선 재범 방지를 위해 가해자들의 신상정보 공개 확대를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인터넷 열람제도 실시되겠지만, 이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 그 지역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신상정보를 통지해주는 것을 검토 중이다. 또 피해자에 대한 보호명령제도 신설하려고 한다. 피해 당한 어린이와 가족의 상처는 엄청나다. 그걸 치료해주고 사회에 복귀시키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돕는 건 전적으로 국가 책임이다. 그러나 예방에 있어서는 학교·학부모·시민·지자체가 함께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제가 광명시장이었을 때는 학부모 순찰대를 조직했다. 무전기 하나씩 줘서 놀이터와 학교를 살피고, 밤에는 아버지 순찰대가 돌도록 했다. 당시 시민들 앞에 경찰서장·교육장 다 같이 데리고 나가 ‘우리 국가가 (순찰을) 하고 싶어도 경찰서나 학교나 인원이 태부족이니 도와 달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부탁했다.”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화학적 거세는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범인 한 사람을 통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전자발찌와 신상공개제를 제대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복지부는 관련된 이해단체가 많다. 그런 단체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힘들지 않나.
“현재까지는 원만하게 지내고 있다. 수가 현실화처럼 들어줘야 하지만 형편상 못 들어주니까 단계적으로 시정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 두 개의 단체가 충돌하는 문제는 일단 국민의 입장에서 판단한다. 그 다음에 두 단체가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일반의약품의 수퍼 판매 허용이나 대체의학 문제 등은 의사와 약사, 현대의학과 전통의학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는데.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판매는 국민의 접근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고, 가격 경쟁력을 통해 값을 낮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제안할 만하다. 그런데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편의점 수보다 약국 수가 많다. 실질적으로 약값이 얼마나 낮춰질지도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농어촌 같이 접근 가능성이 떨어지는 곳 외의 지역에선 허용할 이유가 별로 절실하지 않다. 일반의약품도 과다복용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성의 측면에서도 가능하다면 약국에서 주는 게 낫다고 본다. 대체보완의학은 생명에 관한 것인 만큼 보수적으로 접근해가야 한다. 정부가 인정하는 의학은 근거중심이다. 검증이 확실히 될 때까지 연구용역을 시킨다든지 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관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달(10월) 말 나올 예정이었는데 보고서가 주장만 있고 논거가 없다고 해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기획재정부와 협의도 하고 공청회도 열 거다. 제 개인적인 입장은 유보적이다.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과잉 기대와 과잉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영리법인을 도입하면 엄청난 일자리가 생기고 의료기관 수준이 대폭 상승할 거라는 기대와, 반대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무너지고 건강보험도 민영화될 거라는 우려다. 그 주장들을 모두 과학적으로 연구해봐서 다시 협의하고 토의하자는 거
다.”

-저출산 문제는 전 장관이 ‘등에 불을 지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라 할 만큼 역점을 둬온 사안으로 알고 있다. 손에 잡히는 게 있나.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이젠 그걸 바탕으로 실제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좀 더 재정의 한계를 넘어서서 과감한 지원책을 펴가야 할 필요가 있고, 기업은 결혼한 사람이나 아이 낳은 사람을 우대하는 가족 친화적 문화가 돼야 한다. 아기 업고도 출근하게 한다든지, 육아휴직을 충분히 주고, 복직하면 재훈련도 해준다든지, 그렇게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도 너무 아이를 1등으로만 키우려고 하지 않도록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행복이란 남을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다움을 찾아 남을 배려하며 사는 것 아닌가.”

-여성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전 대표를 어떻게 보나.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한 분이다. 그리고 원칙과 책임을 중시하는 분이고, 오랫동안 정치 현장에서 계셨던 분이다.”

-최근 세종시가 화두다. 2005년 3월 한나라당 의원 시절에 행정수도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반대해 단식까지 했었는데.
“제 개인적인 소신엔 변함이 없다. 당시 생명을 걸고 단식을 했고, 그 근거는 당시 보도된 내용을 보시면 아실 거다. 그러나 행정이란 것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행정부처 장관으로서) 제 개인적인 소신은 피력하지 않고 있다. 얘기하면 정치적 논란거리가 될 테니까.”(당시 열린우리당의 직권상정으로 국회에 제기된 법안을 박 전 대표가 이끌던 한나라당이 여야 합의를 통해 통과시켜주자 전 장관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13일간 단식했다. 행정부처의 70% 이상을 옮기면서 국민투표도 하지 않은 건 헌법 위반이며, 수도권 인구분산과 국토균형발전이란 목적에도 비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당시 전 장관이 제기한 대안은 최근 정운찬 총리의 의견과 같이 기업형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대권도전 꿈은 없나.
“(지체 없이) 없다.(웃음) 대학 졸업 후 계속 일을 해왔기 때문에 공직자도 아름답게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마무리하고, 나중에 실컷 놀아보는 게 꿈이다.(웃음)”

-전 장관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인물은 누구인가. 어머니 이야기를 종종 했던 걸로 아는데.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유관순처럼 돼라, 안중근처럼 돼라 하셨다. 대의를 위해 살라는 걸 강조하셨다. 그리고 선비 스타일이라 세상살이엔 잘 적응하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대신해 우릴 어렵게 키우셨는데, 어려울수록 힘이 난다고 하셨다. 넘어지면 힘내서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힘내서 일어나라고…. 최근 제 마음 속에 영향을 끼치는 게 있다면 우주에 대한 진리와 신앙, 그런 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