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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감추지 말고 드러내야 건강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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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아프리카서 수집한 벽걸이용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이칠용 회장.

"성(性)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누구나 호기심을 갖는 원초적 관심거리죠. 감추려 들면 오히려 부작용만 커져요."

이칠용(58)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 40년 가까운 나전칠기 공예품 제작 경력에 문화재 전문위원, 그리고 한때'공예문화'라는 월간지 발행인을 맡기도 했던 그는 최근 '성물(性物)수집가'라는 직함을 하나 더 추가했다.

서울 논현동 집과 작업실 등에는 지난 26년 동안 세계 30여개국을 돌면서 모은 성 관련 물품 400여점으로 가득하다.

수집품 가운데는 인도네시아산 남근목(男根木)도 있고,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티베트산 옥돌 조각품도 있다. 페루 여인들이 허리 춤에 차고 다녔다는 남근 호신불과 술을 부으면 성 장면이 드러나는 중국제 술잔, 여성의 가슴을 실제 크기로 정밀하게 묘사한 유럽산 앞치마도 있다. 동서양의 춘화도와 '고금소총''소녀경''침상법' 등 성 관련 서적도 많다.

사시사철 한복을 입고 다니는 단아한 선비 차림의 그가 이처럼 발칙(?)해 뵈는 성물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관광차 들른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 온천지대의 성 박물관을 관람한 이후.

"성에 대해서는 무조건 창피하게 생각하고 쉬쉬하려 드는 당시 우리 세태에 비춰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성을 드러내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성의 왜곡화를 막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때부터 그는 성 관련 공예품은 물론 조각.그림.사진.책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청계천 벼룩시장과 인사동 뒷골목.답십리 골동품 상가를 찾아 발품을 팔았고, 각 지방 고미술상도 돌았다. 해외 전시회에 나가면 본업인 공예품보다 부업인 성물에 더 관심을 쏟았다. 주변에서는 "이상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했고, 해외에서 애써 구한 물품을 귀국할 때 공항에서 빼앗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수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가위 폭발적이다. 최근 전북 무주군에서 열린 '반딧불이 축제'의 부대행사로 마련한 '성 특별전'에는 매일같이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이었다. 청소년과 70~80대의 할아버지.할머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오후 10시 문을 닫으려고 하면 "아직 덜 봤는데 벌써 쫓아내느냐"는 항의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 회장은 "수집품은 계속 쌓이는데 보관할 공간은 협소해 고민"이라며 "동서고금의 다양한 성물을 한자리에서 관람하면서 바람직한 성 생활과 이를 위한 섭생 및 건강관리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는 상설 성 박물관을 건립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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