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사형제 폐지 약속…사형수 오잘란 살길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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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새 천년의 태양은 압둘라 오잘란의 편일까. 쿠르드족 반군 지도자 오잘란에게 사형을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터키 정부는 1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연합(EU)정상회담에서 사형제도의 폐지를 약속했다.

EU 가입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터키의 뷜렌트 에제비트 총리는 "사형제 폐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오잘란은 지난 6월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지난달 항소심에서 형이 확정됐다.

터키는 또 그리스와의 에게해 영토분쟁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터키는 EU 회원국 후보 자격을 갖게 됐다.

터키의 사형제 폐지약속에 대해 국제사면위원회(AI)등 인권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쿠르드족 무장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도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오잘란의 생명이 연장된 것은 국제적 압박과 쿠르드족의 '구명작전' 의 승리로 볼 수 있다.

EU는 오잘란에 대한 사형철회와 터키의 EU가입을 연계, 터키를 압박해왔다.

독일(50만).영국(5만) 등에 거주하는 쿠르드족 주민의 보복 테러 가능성이 서방의 터키 압박을 부추겼다.

사형이 선고됐을 때도 이들은 방화.투석 등 격렬 시위를 벌였다.

PKK도 오잘란의 체포 직후부터 오잘란 살리기에 적극 나섰다.

PKK는 오잘란의 명령을 받아 무장투쟁 포기와 평화협상을 제의해 왔다.

터키 정부로서는 이제 유럽국가들의 생존에 필수조건이 된 'EU가입' 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PKK의 무장투쟁이 잦아들고 PKK의 2인자 제바트 소이살까지 지난 7월 체포하면서 PKK의 힘이 약화돼 운신 폭이 넓어졌다.

그러나 오잘란이 완전히 목숨을 구한 것은 아니다.

EU 가입안에 대한 의회의 승인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4월 총선에서 급부상해 에제비트 총리의 좌익 민주당(DSP)과 연정을 구성한 극우정당 국민운동당(MPH)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15년간 3만2천명 이상을 희생시킨 '학살자' 에 대한 터키 국민의 원한을 달래는 일도 남아있다.

국제사회가 일단 연장시킨 오잘란의 목숨은 터키의 국내정세에 따라 좌우되는 셈이다.

오잘란은 78년 PKK를 결성, 쿠르드족 무장독립운동을 이끌어 왔으며 지난 2월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오잘란은 터키어로 복수자란 뜻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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