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 손놓고 폭력시위 막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주말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민중대회' 시위에 대처한 경찰 자세는 한마디로 한심스러웠다.

시위대가 경찰 통제선을 뚫고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폭력시위를 벌이는데도 경찰은 최루탄 사용을 금지시킨 채 근접진압에 나서 경찰관.학생.노동자.농민 등 2백40여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단일시위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이고 부상 정도도 최악이라고 한다.

이같은 상황은 근본적으로 시위대의 불법 폭력행위에 기인하지만 우리는 경찰의 대응방식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위와 관련한 경찰의 1차적 기능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

그것이 합법시위일 때는 시민의 불편과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질서를 유지하고 불법적인 양태가 드러나면 효율적인 진압수단을 동원해 조기에 수습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날 경찰이 취한 태도는 이같은 원칙과는 동떨어진 졸렬하기 짝이 없는 진압방식이었다.

'국민의 정부' 들어 경찰은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정착시킨다는 목표 아래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같은 경찰의 신(新)시위 대책은 그동안 학생운동권 퇴조와 폭력시위 감소 등에 힘입어 시위대 통제 일선에 여경(女警)을 배치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지난주 민중대회 때도 여경기동대와 교통경찰관으로 통제선을 치고 방송을 통해 '평화 행진' 을 당부하는 등 신시위 대책에 이상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가 통제선을 무너뜨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돌발상황이 발생한 후에는 당연히 경찰 대응도 달라져야 했는데도 신시위 대책에 집착한 나머지 최악의 피해를 내고 말았다.

시위대의 격렬행동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조기 해산을 위해 개발한 도구가 최루탄이다.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는데도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막아놓은 채 경찰봉으로 난투극을 벌였다니 무엇을 위한 신시위 대책인가.

그러고도 신임 경찰청장은 "얼마전 미국 시애틀에서 최루탄을 쏘는 것을 보고 미국이 우리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며 "어떤 상황에서도 최루탄만큼은 사용하지 않겠다" 고 했다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찰 지휘부의 한건주의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과거에 폭력시위와 과잉진압이 악순환을 일으켰던 것은 사실이지만 공권력이 얕보여선 안된다는 기본수칙은 지켰어야 했다.

평화시위란 공권력이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폭력을 규제할 때에야 비로소 정착될 수 있다.

시위를 벌이는 쪽도 이제는 폭력을 통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폭력.불법 시위의 끝은 시민의 혐오감밖에 남는 게 없다.

양대 노총은 이번 주에도 파업과 대규모 집회를 갖는 등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가투나 힘의 과시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집단시위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최루탄이든 무엇이든 경찰도 '폴리스 라인' 의 모양새에만 신경쓸 게 아니라 엄정한 '법의 울타리' 를 설정하는 강력한 시위대책을 세워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