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새천년] 한국여성민우회 윤정숙 사무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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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새 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저마다 다가올 세기의 희망들을 풀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꿈꾸는 새천년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바람이 여성들의 새 천년 청사진 안에 들어있을까. 중앙일보의 중앙여성연구포럼에서 활동하는 4인 인사가 여성들이 꿈꾸는 새 천년을 이야기한다.

내가 바라는 새 천년. 그것은 바로 아줌마들이 달라진 새 천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 아줌마들이 '사회주부' 가 돼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새 천년이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아줌마들에게 친근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분명 국어사전에는 아줌마를 '어른인 여자를 친근하게 일컫는 말' 이라고 정의했지만 친근은 커녕 아줌마를 펑퍼짐하고, 탐욕스럽고, 수다스럽고, 제 식구밖에 모르는 집단으로 여겨왔다.

백화점.레스토랑의 고객이나 돼야 아줌마들은 '주부님들' 로 대접받았다. 물론 여기에 아줌마들 자신도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세기말, 아줌마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옳지 않거나 억울한 일을 이전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뒤집고 바로 잡는 '반란' 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얼마전 한 텔레비전은 한 시간이나 할애해 '새로운 파워군단' 으로 떠오르는 '신(新)아줌마' 들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지금 아줌마들은 여기저기에서 꼼꼼하게 의정활동을 펴는 지방의회 의원으로, 학교 촌지거부운동의 주동자로, 우리 농산물과 환경을 살리는 생활협동조합의 전도사로, 유해미디어의 감시자로, 지방의회의 모니터로, 재활용품과 환경상품을 판매하는 녹색가게의 운영자로 지역사회 일에 뛰어들고 있다.

얼마전 일군의 아줌마들은 준농림지에 러브호텔 건설을 허용한 조례를 바꾸도록 만들었다. 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행정을 강행하고 그 속에서 뇌물을 받은 시장을 사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에 그들 자신도 놀랐다. 바로 '아줌마' 들이 해낸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자원은 참으로 소중한 부분이다. 이들은 발로 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도 있고 세상을 바꾸는데 필요한 힘을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

새 천년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새 천년의 비전이 논의되고 있다. 혹자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세계가 열린다고 하고, 전혀 새로운 철학이 등장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새 천년에도 아줌마들은 여전히 생명과 작은 가치들을 지켜내는 일을 할 것이다. 이들 아줌마가 갖고자 하는 힘은 남을 지배하는데 필요한 제로섬의 권력이 결코 아니다.

새 천년엔 모든 아줌마가 '사회주부' 가 돼있기를 나는 꿈꾼다. 그 누구도 아줌마 집단, 아니 사회주부의 눈길과 손길이 무서워 부정과 불의를 함부로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사회주부들이 시민사회의 새로운 파워집단으로 바로 선 사회, 내가 꿈꾸는 새 천년의 유토피아다.

윤정숙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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