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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떠난 기지, 생태·안보공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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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민통선(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25만㎡ 규모의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7월 30일 미군에 공여(供與)된 뒤 5년여 전인 2004년 8월 이 지역 주한미군이 철수하면서 반환됐다. 현재 빈 막사들과 미군이 설치했던 군용 철조망이 남겨진 채 방치돼 있다.

임진강 북단과 인접한 이곳 주변엔 겨울이면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 100여 마리가 시베리아·몽골 등지에서 날아와 월동하는 장단반도 ‘독수리 도래지’가 있다. 민통선 내 마을인 통일촌·해마루촌과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마을인 대성동마을, 경의선 최북단역인 도라산역과도 가깝다. 남방한계선과는 직선거리로 2.1㎞ 거리에 불과한 군부대 작전 지역이다.

우리 군은 이곳에 병력 일부를 옮겨 주둔시킬 계획이다. 관할 군부대인 육군 1사단 측은 “캠프 그리브스는 군 작전상 꼭 필요한 지역”이라며 “지난해 국회에 보고까지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캠프 그리브스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자는 이색적인 시민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 기지를 없애지 말고 근대 유물로 남겨 안보교육과 생태체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파주시의 주요 인사와 문화예술인, 환경운동가들이 뭉쳤다. 푸른파주21실천협의회 이경형 상임대표, (사)문화예술나눔 김종섭 이사장, 파주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 김언호 회장, 화랑교수회 박돈서 회장, 최만린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21명은 최근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지구촌에 마지막으로 남은 전쟁과 냉전의 현장”이라며 “생태환경의 보고인 민통선과 DMZ가 어우러져 독보적인 인류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캠프 그리브스의 내부 시설을 일부 개·보수해 안보기념관, 평화미술관, 생태교실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경형 상임대표는 “분단의 아픔이 서린 미군기지는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의 희망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라고 말했다.

캠프 그리브스 부지에 ‘남북 및 국제문화예술 교류단지’ 조성을 계획했던 파주시도 원형 보존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류화선 파주시장은 “군부대 주둔지는 캠프 그리브스 인근에 대토 형식으로 옮기면 된다”고 말했다. 

파주=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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