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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NGO 긴밀한 협력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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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미 시애틀에서 진행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선언문 채택이 결렬된 채 막을 내렸다.

최대관건으로 제기됐던 농업 문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요소가 될 수 있는 환경가치와 식량안보 기능 등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항목별로 선언문에 포함시키는 것을 합의한 것은 WTO협상의 성과다.

이번 WTO회의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으로 합의된 농산물과 서비스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개방을 합의하는 자리이자 향후 3년간 진행될 부문별 의제작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자리다.

그러나 수입국을 중심으로 한 케언즈 그룹과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클린턴 정부의 강력한 개방요구에 맞서는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그리고 UR협상으로 인해 피해를 본 제3세계 국민들의 저항이 일대 격돌을 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 협상의 결렬은 미국 주도의 세계시장에 대한 전세계 국민의 저항이자 환경과 노동. 보건. 여성 등 경제와 경쟁중심이 아닌 다양한 가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뮐╂岵?비정부기구(NGO)활동의 성과이기도 하다.

지난 92년 리우환경회의나 코펜하겐에서 진행된 사회개발정상회의, 헤비타트 세계주거회의 등 NGO의 역할은 갈수록 확대돼가고 있다.

11월 29일부터 시작된 WTO 시애틀NGO대회는 공식 참가신청을 낸 세계의 NGO만도 7백76개에 달하며 이는 92년 리우환경회의에 참여한 3백60개의 2배에 달하는 숫자다.

UR협정에 이은 현WTO체제는 각 회원국에 공평한 부의 증진을 가져다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환경파괴와 노동자.농민을 희생해 다국적 기업만을 살찌워 왔으며 미국 중심의 불평등한 협상을 강요했다.

미국은 불공정한 다국적기업의 이윤추구의 중심에 있으며 세계의 NGO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것이 아닌 지구환경과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위협받는 세계 국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소외된 나라의 어려움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일 오전 개막식을 가진 WTO각료회의는 세계NGO들의 인간사슬로 저지돼 오후를 훨씬 넘기고서야 시작됐으며 각료회의 기간 내내 시애틀 도심은 각국NGO들의 대규모 시위와 환경.노동. 농업 등 주제별 토론과 공동선언 채택 등의 활발한 활동이 진행됐다.

미국에서는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최루가스가 분사됐고 세계적으로는 60년대 반전시위 이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됐다.

우리나라 또한 농업.환경.생명을 위한 WTO협상 범국민연대와 투자협정.WTO반대 민중행동에서 대표단을 파견했으며 WTO체제의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한 활동과 정부의 협상활동에 대한 감시 활동, 국제NGO와의 연대활동 등을 진행했으며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고 중심원칙을 세우는 데 NGO가 큰 몫을 했다.

지금까지 외교통상부로 대표되는 정부의 입장은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살길은 수출뿐이며 WTO체제에서도 공세적인 개방요구로 우리의 실리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것의 기준을 가격과 경쟁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살리고 지킬 것인가가 빠져 있는 것이다.

농업이 가지고 있는 환경.생명.안보.문화적 가치 등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인정하고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 공평한 부의 분배를 고려한 가치를 중심으로 한 사고의 전환이 없다면 능숙한 협상에도 우리에게 실제 이익은 돌아올 것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번 WTO대응시 국내NGO와 정부의 관계가 대립적인 평행선을 긋는 것이 아닌 상호 보완관계를 유지한 것은 UR협상 때와는 또다른 발전된 모습이다.

이번 협상 결렬로 내년 1월 제네바에서의 선언문 채택을 위한 회의가 다시 계획됐으며 농업과 서비스분야는 세부적인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시애틀과 제네바 회의가 협상의 대략의 방향을 잡는 것이라면 앞으로의 3년은 세부안에 대한 확정을 하는 것으로 NGO와 정부의 공동대응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또한 지구적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하는 NGO의 역할은 국가별 이익을 앞세우는 국제회의에서 중심을 잡아내고 공정한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등 큰 역할을 할 것이다.

21세기 세계무역질서를 가늠하는 이번 시애틀 회의의 결렬은 21세기 NGO의 위상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21세기 전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NGO와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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