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두통거리 Y2K] 각국 대응책 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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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는 지금 온통 'Y2K(컴퓨터 2000년도 인식 오류)'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과연 12월 31일 밤 해외로 여행을 떠나도 되나" 는 일반적인 궁금증은 물론이거니와 Y2K의 충격이 어느 정도까지 미칠지 현재로선 감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단 주요국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실제 여러번에 걸친 모의실험에서도 별다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의 준비태세는 아직 불안하기만 하다.

2000년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현 시점에서 각국의 Y2K 대책 현황을 점검해본다.

◇ 미국

인터넷 발전을 선도하는 국가답게 지난 95년부터 정부가 에너지.항공 등 관련 주요기업과 공동으로 'Y2K 대책 프로그램' 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현재 군사.정보통신.금융.항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 상태다.

그러나 최근 '911전화(한국의 119)' 의 Y2K 오작동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조사에서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선작업이 뒤처진 것으로 드러나자 경찰 당국은 전 행정력을 동원해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문제인 만큼 이달 중순까지는 작업을 완료시킨다는 계획이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소비자 심리 불안' 도 새로운 난제다.

상점에서 식료품.의약품 등을 매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현금 회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클린턴 대통령은 최근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분야에서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 '12월 31일 밤에 운항하는 국제선 비행기에는 연료를 평상시보다 많이 싣게 하는 등 비상대책도 동시에 수립한 상태다.

◇ 유럽

독일의 월너 뮬러 경제장관은 지난달말 유럽의 Y2K 대응 조사 보고서를 내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럽 기업의 98%가 Y2K 대응을 끝냈다" 고 발표했다.

가스.석유 공급 부분 시스템 개선작업도 이달 중순까지는 완료된다.

적어도 Y2K 문제에 있어선 미국을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유럽연합(EU)측의 판단이다.

실제 EU는 올초 금융.교통.에너지.정보통신.원전 등 인프라 관련 기업의 대표들을 집결한 '작업 위원회' 를 조직, 두번에 걸쳐 각국의 준비상황을 점검해 왔다.

그러나 EU에 속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불안감이 잠재돼 있다.

이때럽 의회는 지난주 "EU외 국가들은 Y2K에 대한 충분한 대응이 준비돼 있지 않은 만큼 12월 31일 밤 핵시설 운전을 일시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한다" 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 일본

비교적 늦게 Y2K 대응에 나섰지만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현재 모든 분야에서 준비가 완료된 상태. 지방자치단체별로도 최종 점검이 끝난 상태다.

항공기도 평소처럼 띄운다는 계획이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도 지난 3일부터 TV 공익광고를 통해 "Y2K와 관련한 불안 요소가 전혀 없지만 조심을 기하기 위해서라도 모두 주의를 환기하자" 고 호소했다.

이와 동시에 일본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연말연시 부처별로 모두 1만여명을 대기시켜 에너지.의료.교통 등 국민생활 분야에서의 사고에 대비하고 ▶12월 31일과 1월 1일 이틀에 걸쳐 오부치 총리 등 정부 수뇌진이 총리관저에서 대책을 진두 지휘한다는 방침이다.

◇ 잠재적 위험국가

Y2K 사고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는 러시아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컴퓨터 시스템 개선작업에 차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다운돼 난방.전기.수도.전화 등 공공 서비스가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때문에 미국은 "가뜩이나 혹한기에 신변 안전이 우려된다" 며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몰도바 등 옛 소련 연방 4개국 대사관 직원들로 하여금 연말연시를 국외에서 보내도록 권유할 정도다.

이타르-타스통신은 3일 "최소한 연말까지 1만명의 미국인이 빠져나갈 것" 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핵무기와 원전사고. 미국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수차례 가상훈련을 마치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나머지 미국의 핵 전문가들을 아예 모스크바 위기통제센터에 대기시킨다는 계획이다.

또한 12월 31일 미 콜로라도주 스프링스 북미우주항공사령부(NOAD)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불침번' 을 서기로 했다.

어느쪽에서든 핵미사일이 잘못 발사되면 공중폭파 등 비상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중국도 안정권은 아니다.

Y2K 문제를 총괄하는 정부 당국자조차 최근 "금융.전력 등은 비교적 걱정이 없지만 워낙 인구가 많고 땅이 넓다보니 내륙지방의 일반 상거래와 병원.교통 분야에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고 털어놓을 정도다.

이밖에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등이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파리.뉴욕.도쿄〓배명복.신중돈.오영환 특파원,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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