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노동법 개정'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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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 총재권한대행실에서 박인상(朴仁相)한국노총 위원장 등 노총 대표들을 맞았다.

朴위원장은 굳은 얼굴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을 허용해 주겠다던 여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고 항의했다.

곤란할 때면 짓는 李대행의 너털웃음이 이어졌다.

李대행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복잡한 것 같던데 잘 의논해보자" 고 말을 받았다.

노동계의 무시할 수 없는 압박을 받고 있는 집권당 대표의 난처함이 그대로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임채정(林采正)정책위의장은 배석하지 않았다.

대신 정세균(丁世均)제3정책조정위원장이 배석했다.

대행과 정책위의장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노총측이 '확약' 을 요구할 경우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林의장은 다른 자리에서 처벌규정 삭제쪽으로 법개정을 추진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라고 반문했다.

국민회의는 이처럼 최근 파문을 일으킨 '전임자 임금지급 처벌규정 삭제' 움직임과 관련해 재계와 노동계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그렇지만 국민회의의 결론은 이번 정기국회에선 법개정을 추진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국민회의 관계자는 "내년 4월 총선 전까지도 법개정이 어려울 것" 이라고 전망했다.

당차원에서 법개정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개별의원의 입법발의까지 억제하는 방안까지 강구되고 있다.

그러나 여당 지도부는 이같이 입장을 정리하면서도 공식적으로 당론을 발표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같은 선택의 배경에는 16대 총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다는 고민이 깔려 있다.

정치자금 제공 등 정치활동을 불사하겠다고 나선 재계와, 노조원들의 결속력을 무기로 총선에서 표로 심판하겠다는 노동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회쪽의 법개정 움직임은 일단 주춤해질 것으로 보인다.

법안 개정은 노동계 출신의 국회 환경노동위 의원들에 의해 주도됐다.

3일 재계의 강력한 반발 뒤 조성준(趙誠俊.국민회의)의원에게 개정작업에 함께 서명한 여야 의원(24명)중 상당수가 전화를 걸어 걱정을 표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법안 개정의 상황은 불투명한 요소가 있다.

재계의 반발이 오히려 노동계의 투쟁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국민회의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노동계임을 감안하면 표이탈 현상이 초래될 소지도 있다.

국민회의 한 당직자는 "재계와 노동계의 극한대립 양상이 여론에 어떻게 투영될지가 주요변수가 될 수 있다" 면서 "여론이 뒤를 받쳐주면 법개정 압력이 거세질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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