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키워드] 5. 효율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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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환경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950년대 말을 지구적 규모의 환경파괴가 시작된 분기점으로 본다.

이때부터 서구에서 대량소비가 일상화돼 전지구적인 자원낭비 체제가 확립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낭비 체제가 지구 생태계에 초래한 결과는 60년대 말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학물질의 대량소비로 인한 생태계 파괴, 에너지.지하자원의 고갈 등은 모두 낭비적 생활양식이 보편화된 결과다.

이로 인한 위기를 '효율혁명' 을 통해 극복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독일의 환경정치가 에른스트 바이츠제커와 미국의 에너지연구가 애모리 로빈스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생산활동과 소비행위에 투입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이용 효율을 극대화하면 현재 인류가 누리는 복지를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효율혁명' 의 주창자들은 현재 인류가 처한 생태 위기는 자원의 효율이 적어도 4배까지 올라가야만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이들은 특별히 새로운 기술개발을 하지 않고 현존하는 기술만 제대로 활용해도 4배의 효율 향상을 이룰 수 있고, 더 나아가 10배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

효율이 높은 기술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여러 부문에서 이용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주목받는 기술 중에는 효율이 90%에 달하는 가스 복합화력발전소와 유기가스 발전시설이 있다.

가스 복합화력발전소에서는 연소된 뜨거운 가스가 처음에 가스터빈을 통과하면서 전기를 생산하고, 그후 증기터빈을 돌려 또 한차례 전기를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남는 열을 난방에 이용하면 전체 효율이 전통적인 화력발전의 3배에 달하게 된다.

유기가스를 이용한 발전시설에서는 유기 쓰레기를 발효시켜 얻는 가스를 이용해 발전과 난방을 하고 발효 찌꺼기는 퇴비의 형태로 땅으로 되돌려지기 때문에 효율의 향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자원의 순환을 통한 이용 효율을 극대화함으로써 순환경제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게 한다.

효율혁명을 위한 장치로는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의 사용과 같이 환경에 부담을 주는 활동에 세금을 높게 부과하는 생태적 세제 개혁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생산자의 제품이 팔려 나가면 그의 손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폐기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며, 소비자는 단지 제품을 임대해 쓰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사용연한과 재사용이 늘어나 자원이용 효율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21세기에는 노동생산성보다 효율이 훨씬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자원의 이용 효율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효율의 향상이 반드시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절전 전구로 바꾸면 전기료가 적게 든다고 해 전구를 더 오래 켜두면 에너지 사용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듯이 효율이 높아지는 대신 활동이 증가하면 효과는 제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양식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효율 향상으로도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생태적 효율혁명이란 효율의 향상만 꾀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소비, 그리고 인간의 생활양식을 포괄하는 모든 영역에서 자원의 순환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순환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필렬(방송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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