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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첫 영상만화학과 졸업앞둔 학생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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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기' 라는 말은 각별하다. 길을 만들어 가는 뿌듯함과 시행착오를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고충은 이 수식어를 사용하는 자들만의 권리이자 의무다.

4년제 대학 최초로 세종대에 영상만화학과가 생긴 것이 96년. 그 '1기' 들이 지난달 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졸업작품전을 가졌다. 이들의 대학 4년은 어떤 색깔이었으며 그들이 설계한 미래의 '스토리보드' 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나이.성별.특기.진로가 서로 다른 졸업예정자 5명을 만났다.

-대학생활을 돌이켜보면.

"미대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어요. 주위엔 컴퓨터뿐이었어요. " (이승진)

"컴퓨터 작업 외에 클레이(점토).컷아웃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지만 쉽지 않아요. " (이주영) 이들 5명은 한결같이 학생은 계속 늘어나는데 장비와 공간은 그대로이고 전공교수가 부족한데다 학사과정마저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4년제 대학생으로서 누린 혜택이 있다면.

"그림을 그리는 작업보다 그림을 보는 시야를 넓혔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제일 큰 수확입니다. " (이승관)

- '감독' 만 양성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가 일본과 미국에 뒤지는 이유는 제대로 된 감독이 적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는 하청위주여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전 과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이승진)

-졸업 후 진로는.

"요즘 게임회사에서 구인 문의가 엄청나게 와요. 그래도 25%는 계속 공부할 계획입니다. 이번에 중앙대와 서강대에 석사과정이 생겼어요. 50%는 취업하고 나머지 25%는 나름대로 살아가요. 유학은 멀티미디어가 강한 미국쪽을 더 좋아합니다. " (이승진)

- '학교' 와 '현장' 의 차이가 있다면.

"여름방학 이후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능력보다 인간관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셀(투명한 비닐)부터 닦아야하는 생활을 못 견디는 친구들이 많죠.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선배들을 '지휘' 하는 것도 어렵고요. " (윤재섭)

-관련 페스티벌이 많아졌는데.

"기회가 느는 건 고맙죠. 다만 학기중에 행사가 많아 고생했어요. 공부할 시간에 부스를 만들고 해야 하니까요. 그런 점은 고려가 됐으면 해요. " (윤재섭)

-공모전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죠. 학생들은 명예도 얻고 돈도 벌잖아요. 지명도 있는 공모전이 꼭 필요해요. " (이승관)

-정부 지원금도 늘었다고 하는데.

"3차원 컴퓨터 작품을 하면 벤처기업으로 선정돼 지원금이 나와요. 그런데 기존의 2차원 작품을 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면 애니메이션 지원 자금이 공대 쪽으로 흘러가게 돼요. " (김정경)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서.

"만화 그려요 하면 무시하는데, 애니메이션 해요 하면 돈 많이 벌겠네 그래요. " (이주영)

"요즘 홍대 앞 화실들 간판이 다 바뀌었어요. 애니메이션 전문이라고요. 잘 된다니까 간판만 바꾸는데 이거야말로 거품이죠. 게다가 만화가 받쳐주지 못하면 애니메이션도 안돼요.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 (김정경)

내년 2월 졸업 후 윤재섭씨와 이주영씨는 제작사와 광고CF회사로 취업, 이승관씨와 이승진씨는 대학원 진학을 택하고 김정경씨는 개인작업실을 차릴 계획이다.

이들은 "90년 공주전문대에 만화학과가 생긴지 10년만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40여개나 되는 것은 우리 실정에 좀 과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자원이죠. 적어도 2~3년 안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가 필요없지는 않았구나' 하는 평가가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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