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바닷길 뚫리고 철책선까지 구멍 나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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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우리 군의 전방 경계 태세가 너무 허술하다. 한 민간인이 동부전선의 최전방 철책선을 뚫고 월북(越北)하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특히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월북 사실을 보도한 뒤에야 허겁지겁 철책선을 점검했고 뚫린 지 최소한 만 하루 이상 지나서야 발견했다고 한다. 일반인이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전방 철책선까지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상식이다. 철책선은커녕 수 킬로미터 떨어진 민간인 통제선조차 허가 없이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런 상식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월북한 강씨가 자신이 근무했던 지역이어서 순찰 간격이나 지형 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북한이 알려주기 전까지’ 뚫린 사실을 몰랐다는 점은 어떤 변명도 허용치 않는다. 해당 부대의 근무 기강이 터무니없이 해이해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건 경위를 자세히 파악하는 일을 넘어 부대 운영에도 문제점이 없는지 조사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휘선상에 대한 엄중 문책도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04년에도 중부전선에서 이번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고, 이듬해에는 북한 병사가 철책선을 넘어 월남한 일도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귀순 북한 주민들이 탄 어선이 동해상 북방한계선을 넘어 오랜 시간 우리 영해를 배회한 끝에 항구에 접근할 때까지 우리 군이 몰랐던 일이 있었다. 우리 군의 대북 경계 태세가 육상이든 해상이든 모든 부문에서 구멍이 나 있지 않은가 걱정스럽다. 경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군 전체의 전면적인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

국민은 군인들이 철책선을 점검하며 순찰하는 장면을 TV 등을 통해 보며 우리 군의 ‘철통 같은 경계 태세’에 대한 신뢰를 키워 왔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는 그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것이다.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상실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철통 경계’가 말뿐이 아님을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군 수뇌부 차원의 뼈아픈 고민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