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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용늪’ 잎 지며 드러나는 안갯속 알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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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이달 초 강원도 양구군과 원주지방환경청은 대암산 자락과 용늪을 지나는 생태탐방로를 만들었다. 이를 기념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최근 한 차례 ‘용늪’ 답사를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군에는 ‘용늪을 개방하는 것이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용늪은 자연생태계 특별보호구역으로 내년 7월까지 출입이 통제돼 있다. 두 기관은 “만료 시한 이전에 개방하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현재 용늪은 일반 개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여행업계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용늪에 다녀왔다.

해발 1280m 고지에 있는 용늪은 벌써 겨울이다. 세상을 향해 문이 닫혀 있었던 용늪이 이제 개방 준비에 들어갔다.

대암산 아래 해발 1280m 고지에 자리 잡은 용늪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었고, 1989년 자연생태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97년 람사르협약에 가입하자마자 첫 번째로 등록한 습지다. 이에 따라 생태 보호를 위해 내년 7월까지 출입이 금지된 것이다. 이중, 삼중의 잠금 장치 때문에 이 늪에 접근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어쨌든 지금 세상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양구군 남면 광치자연휴양림에서 용늪 전망대를 거쳐 동면 도솔산 전투 위령비에 이르는 16.7㎞의 길에 탐방로가 조성됐다. 인도를 연결하고 대암산 근방 군부대가 이용하던 황톳길에는 판석이 깔려 있다. 코스별로 5개의 탐방로가 있는데 짧게는 2시간30분, 길게는 8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아직은 일부 탐방로엔 사람이 다닐 수 없고 제약이 많다. 지방환경청은 “탐방로는 사람이 다니기 위한 것보다 용늪 근방 황톳길에서 이는 토사와 먼지가 늪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환경 보호 목적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그래도 취재는 허용됐다. 어쨌든 과거보다는 접근하기 수월해진 것이다.

1 용늪 삿갓사초 군락지에서 뛰노는 노루. 2 서리가 내린 넓은잎천남성 붉은 열매. 3 먹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큰땅콩물방개.

용늪은 벌써 겨울이었다. 늪지에는 벌써 눈발이 날렸다. 숲은 습했다. 이곳은 연중 170일 정도가 안개에 싸이고, 150일 정도는 영하로 떨어진다고 했다. 안개와 눈이 많고 수시로 얼어붙는 이곳의 습한 기운이 늪을 만든 것이다.

용늪 전망대로 올랐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늪은 마치 추수를 앞둔 여름날의 밀밭 같다. 직경 1㎞ 규모의 늪을 뒤덮고 있는 삿갓사초가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용늪으로 내려가 발목까지 오는 삿갓사초 바다에 발을 담그고 늪을 바라봤다. 위에서 볼 때보다 훨씬 널찍했고, 작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용늪 안에는 멍석 크기만 한 웅덩이가 여럿 있다. 들여다보니 물방개 두 마리가 먹이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늪은 생동하고 있었다.

3월부터 용늪관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서흥리 주민 김정엽(47)씨는 “겨울에는 검은독수리가 많고, 가끔씩 산양과 노루도 볼 수 있다. 멧돼지 가족은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을 찾았던 23일 새벽에 노루 가족을 카메라로 잡을 수 있었다. 암노루 세 마리가 늪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광경이었다. 늪을 관리하는 관계자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며 심드렁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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