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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무는 北체제 변호, 93년 이후엔 ‘그림자 대사관’ 역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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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난 8월 19일 김명길 북한 주 유엔 대표부 공사가 미국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공관을 방문,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공관 내 ‘넘버 3’로, 대미 관계를 책임져 온 김 공사는 컬럼비아대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곧 평양으로 귀국한다. 후임은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한성렬이다. [AP=연합뉴스]

한성렬 전 북한 유엔주재 차석 대사가 뉴욕으로 복귀하고, 뉴욕에서의 북·미 대화 국면이 재개되면서 ‘뉴욕 채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뉴욕 채널은 북한의 유엔대표부와 미 국무부 간 대화통로다. 1993년 6월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미 간 첫 뉴욕접촉이 열린 이후, 뉴욕의 북한 대표부는 북·미 본격 협상의 장으로, 또는 소강기 물밑 접촉 창구기능을 해왔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대북 특사의 방북 통보도,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기자 석방을 위해 추진한 방북 협상도 뉴욕 채널을 통해 이뤄졌다. 북한은 공세적 대미 정책으로 전환한 듯하다. 북한의 ‘섀도 주미 대사관’으로 불리는 유엔 대표부의 활동도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베일에 싸여 있는 주 유엔 북한 대표부 외교관들의 삶, 그들의 외교 스타일을 들여다봤다.

“‘KAL 858기 사건은 미국 CIA(중앙정보국)가 벌인 일이다. 전 세계에서 일어난 항공기 폭파사건은 모두 CIA의 짓이다’. 1987년 11월 KAL 858기 사건 직후 열린 유엔 안보리회의장에서 박길연 당시 북한 대표(현 외무성 부상)는 한 시간 동안 이 같은 내용을 되풀이했다. 북한의 맹방이던 중국측 대표의 얼굴 표정도 일그러졌다. 93년 냉전이 해체된 뒤, 한국을 찾은 중국 외교관은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가장 짜증났던(embarassing) 일’이라고 말하더라.” 전직 외교관의 회고다. 북한은 유엔 가입(91년) 전인 75년 세계보건기구(WHO) 가입에 맞춰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 대표부를 뉴욕에 설치했다. 북한 외교관들이 유엔 회의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임무는 ‘방어’다. 뉴욕에 근무했던 외교관들은 “국제 이슈의 흐름을 분석해 본국에 보고하거나, 자국의 아이디어를 적극 개진하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북한 핵이나 인권 문제 등 자신들의 입장에서 ‘공화국의 존엄을 훼손하는 움직임’에 대해 반박하는 일을 주로 한다”고 전한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 외교관들은 반미대열에 선 베네수엘라나 쿠바·미얀마 외교관들과 친한 편인데, 약소국 권리가 침해받는 국제적 사안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펼치는 것과 달리, 북한이 직접 거론되는 이슈가 아니면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엔에 정통한 한 전직 외교관은 “90년대까지 북한 외교관들은 남한 외교관을 만났을 때 눈을 먼저 피하지 말라는 훈련까지 받고 나온 듯했지만 지금은 가벼운 농담 정도는 서로 주고받는다”며 세련된 매너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유엔 대표부의 대미 외교 활동은 폭이 좁다.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그의 보좌관인 토니 남궁, 코리아 소사이어티 인사들, 학계 북한 전문가들을 신뢰하고 이들을 통해 상황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편이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북한 외교관들은 나와의 만남을 편안해하고 내가 그들을 위해 들을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안다”고 말했다.

신선호 주 유엔대사 등 외교관 8명
현재 주 유엔 북한 대표부에 나와 있는 외교관은 8명. 박길연 대사의 뒤를 이어 지난해 4월 부임한 신선호 대사와 박덕훈 차석대사, 김명길 정무 공사, 그리고 참사관 3명과 서기관 2명이다. 현지 소식통은 “대사와 공사 등 고위직은 개별 차량을 이용하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인지 미니밴을 타고 출퇴근을 함께 한다”고 말했다.

2006년 미국 abc방송은 미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 외교관들은 서로 감시하기 위해 짝을 이뤄 다니고, 상관에게 동료의 일탈행동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유엔 외교 소식통들은 “1명씩 개별적으로 다니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뉴욕에 파견되는 북한 외교관들은 당성이 충분히 검증된 충성심 높은 엘리트들이라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대부분 영어가 유창하고, 젊은 외교관들은 프랑스어 실력도 뛰어나다”고 평했다. 신선호 대사의 경우 영어 실력은 좀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래서인지 유엔 회의장에서 영어로 발언하고 인터뷰도 영어로 답했던 전임 박길연 대사와 달리, 신 대사는 유엔 회의에 참관만 하고 박덕근 차석대사가 북한의 입장을 주로 주장한다고 한다.

북한의 주 유엔 대표부는 유엔 대표부 기능과 주미 대사관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한 지붕 아래 두 공관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유엔 업무 담당과 대미협상 파트의 일이 엄격히 분리돼 있고, 보고 라인도 다르다고 전했다. 한성렬 차석대사가 복귀하면 김명길의 업무를 받아 대미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8월 김명길 공사가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공관을 방문한 것은 대표부 내 업무 분장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다. 김 공사와 리처드슨 면담은 북·미 대화의 물꼬가 될 것이란 기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행사였다. 그런 행사에 공관 내 ‘넘버 3’인 김 공사가 움직인 것이다. 김 공사의 뉴멕시코주 방문길에 동행한 백정호 참사관은 보위부 소속으로, 공관 내 군기반장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외교관과 가족들은 맨해튼의 루스벨트 섬 북쪽에 위치한 서민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 김모씨에 따르면, “원 베드룸의 경우 한 달에 1700~1800달러(금융위기 전엔 2300달러선), 투 베드룸의 경우 1900~2500달러 내야 하는 오래된 아파트”라면서 “맨해튼 물가 기준으로는 임대료가 싼 편”이라고 말했다. 외교관들은 같은 건물(棟)에 모여 살고 부인들의 경우, 쇼핑도 함께 다닌다고 한다. 유엔의 외교관 리스트를 보면 ‘Mrs.Pak, Mrs.Kim’이란 직원 명단이 나온다. 외교관들의 부인들이다. 공관 내 비서나 행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자녀들은 인근 지역 공립학교에 보낸다. 유명 사립 대학을 다닌 경우도 있다. 김명길 공사의 아들이 3년째 컬럼비아대에 다니고 있다. 90년대 후반 한성렬 차석대사의 딸 역시 이 학교에 다녔다. 외교 소식통은 “김 공사의 아들은 학교를 중단하고 아버지와 함께 평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 정부나 학계 인사들이 북한 외교관 자녀들이 미국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우도 꽤 있다. 외교 소식통은 “대학 측에 입학과 장학금을 주선하는 경우도 있고, 유엔 사무국 인턴 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북한 고위 인사의 자녀들을 미국적 가치, 문화에 노출시켜서 나쁠 게 없다는 전략적 고려’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외교관들은 자녀 중 일부를 평양에 남겨두고 나온다”면서 가족 동반 일탈을 막기 위한 평양 당국의 단속으로 분석했다.

직급 따라 월 300~600달러 생활 빠듯

①신선호 대사가 지난 5월 25일 미국 뉴욕 2번가 북한 대표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 이날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만장일치로 비난 결의안을 채택했다. ②하루 뒤인 26일 박덕훈 차석대사가 뉴욕 유엔본부 건물 입구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③2006년 10월 14일 박길연 당시 대사가 유엔 안보리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북한 외교관들의 생활은 넉넉지 않다. 이들이 평양으로부터 받는 체재비는 월 300~600달러. 직급에 따라 다르다. 뉴욕의 높은 물가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미국적 교포 기업인과 뉴욕시의 일부 기업인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관이나 가족이 아플 경우, 한인 의사의 무료 진료를 받기도 한다. 60년대 후반 동남아에서 근무한 전직 외교관은 “우리 외교관들도 당시 한국보다 잘 살았던 필리핀에서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해 아파도 참으며 병을 키웠다”고 말했다. 유엔 소식통은 90년대 후반 북한 고위 외교관의 부인이 병세가 심해 교포들과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컬럼비아 의과 대학에 입원했는데, 입원이 길어지자 곧 바로 평양에서 불러 들였다고 전했다. “아주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당시 그 외교관이 망명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유엔 대표부는 북한의 여느 해외 주재 대사관과 달리 불법 외화벌이에 나서진 않는다고 한다. 유엔 한국 대표부의 한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있고 물의를 일으킨 적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해외공관원들은 76년 스웨덴에서 마약 판매를 하다 적발돼 스칸디나비아 4개국 외교관 12명이 추방된 것을 비롯, 90년대 후반까지 불법활동으로 외신의 한 모퉁이를 수시로 장식해왔다.

82년 9월 오남철 사건 이후 뉴욕에서 북한 외교관이 일으킨 사건은 거의 없었다. 당시 3등 서기관이던 오남철은 트윈 레이크 공원 산책로에서 흑인 여성을 성추행하고 폭행하려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치외법권 지대인 대표부 건물로 은신했다. 10개월 동안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 정부가 북한 고위 외교관들의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북한 외교관들을 추방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오남철은 대표부 건물에서 나왔고, 재판에 출석한 뒤 추방 및 재입국 영구금지 처분을 받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오남철 사건은 미국 법조계에서 외교관 불체포 특권 사례로 남았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생활총화’ 교육
북한 외교관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는 “퇴근길에 북한 외교관이 테니스 연습을 마치고 돌아온 초등학생 아들을 반갑게 맞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며 “평양 사투리를 듣기 전엔 남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부인들의 경우 함께 쇼핑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미국인 주민들과 대화하기도 한다. 외교 소식통은 “아주 폐쇄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의 아파트를 방문한 외국인에 따르면 아파트 현관 입구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이 걸려있다. 토요일 오전은 전 직원 가족들이 한곳에 모여 ‘생활총화’를 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지난 1주일을 돌이켜보고, 평양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을 숙독하고 암기하는 모임이다. 유엔에 오래 근무한 한 외교관은 “북한 외교관들의 큰 낙 중 하나가 1년에 한 번 정도 허드슨 강에 배를 타고 나가 고등어 낚시를 하고 요리도 해먹는 야유회 행사라며 코리아 소사이어티나 현지의 교포들이 경비는 지원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관과 가족들의 여행은 제한된다. 미국과 외교 관계가 수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부 건물인 맨해튼 2번가 820번지 공관 건물과 유엔본부 반경 25마일(약 40㎞)을 벗어날 수 없도록 돼있다. 뉴욕과 뉴저지의 포트 리, 팰리사이트 파크 지역까지만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고 이외 지역은 일일이 미 국무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2007년 9월 북한 외교관 관리와 가족 16명이 관광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1박2일 워싱턴 나들이에 나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2006년 10월 핵실험 뒤 한성렬 차석 대사의 하버드 대학 강연은 국무부가 허가하지 않아 무산됐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특별한 안보적 사안을 제외한 문화 인도적인 차원의 여행은 조용히 허가하고 있다”고 했다. 한 외교관은 최근 북한 외교관과 가족들이 단체 회식이나 소풍을 위해 가끔씩 워싱턴 다리를 건너 뉴저지까지 건너오는 경우가 눈에 띈다”며 “4~5년 전엔 볼 수 없던 모습”이라고 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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