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봉사활동 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 -실버 일본어 통번역 봉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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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년은 인생의 황혼기가 아닌 사회에 봉사할 새로운 기회' '우리가 사회에 봉사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은 더욱 젊어지고 풍부해진다' -. 은발의 노인들이 뭉쳐 이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인공은 '실버 일본어 통.번역 봉사회' (부산 동구 초량동). 이 봉사회는 30일 부산시와 한국자원봉사연합회가 공동주최한 제 6회 자원봉사대축제에서 부산지역 2천80개의 각종 봉사단체를 따돌리고 영예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나이를 잊은 노익장에다 전문성까지 갖춘 봉사활동이 큰 점수를 얻었다. 이 봉사단체가 결성된 것은 지난 96년 10월.

당시 상담단체인 '노인의 전화' 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고령 인력 활용을 고심하다 일본어 통.번역 봉사단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부산지역 노인들 중에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정무련(鄭茂鍊.72)회장은 "신문을 통해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모집했는데 무려 1백30명이 응모했다. 할 수 없이 일본어 테스트를 통해 뽑았다" 고 말했다.

응시자 중 할아버지 28명.할머니 22명 등 50명이 이 관문을 통과했다. 현재 회원은 46명. 평균 나이는 칠순을 조금 넘고 최고령은 무려 팔순이다. 대부분 교육계.공직 등에서 퇴직한 노인들이다.

주요 활동은 일본어 통.번역과 간행물 오자(誤字)교정작업. 그동안 펼친 봉사활동은 부산자갈치축제 일본인 안내.일본 구마모토현 상공회의소 시찰단 안내.부산관광안내서 일역(日譯)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부산을 찾은 일본 정치인.상공인.공무원 등에 대한 통역도 이들의 단골 차지였다.

이 뿐 아니다. 부산지역의 관광특구와 공원 등을 직접 다니며 일본어 표기가 틀린 안내판을 찾아 고치는 작업도 빼놓지 않고 있다.

부산 용두산 공원 관광안내판 일본어 오자도 이들이 발로 뛰어 고쳤다.

지난 5월 일본에 귀화한 한국계 3세 여성이 조상의 뿌리를 찾기 위해 부산에 왔을 때 발벗고 나서 묘소를 찾아주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통.번역 활동에서 사례금은 받지 않는다. 다만 통.번역 의뢰인이 끝까지 고집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놓는다.

부산에 주재한 일본인 상사원들의 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민간외교관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어 통.번역을 하다 보니 일본에도 꽤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도쿄의 한 출판사가 발간한 '부산에 반해 버렸어' 란 책자에 이들의 봉사 활동 내용이 상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鄭회장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월드컵 때 매끄러운 통역을 위해 자원봉사 일본어 통역원들에 대한 일어 교육을 맡아 도움을 주고 싶다" 고 말했다.

김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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