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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도전현장] 1. 상하이 전체가 거대한 벤처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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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쩍 부쩍 살이 찐다-. 상하이(上海)를 들를 때마다 갖게 되는 느낌이다. 새로 들어선 건물들로 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수요가 공급을 못따라 빈 건물이 수두룩한데도 공사장 굉음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상하이에선 빌딩이름으로 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번지수를 챙겨야 한다. 십여년 전엔 10층 이상 빌딩을 손쉽게 헤아렸지만 2천개 이상으로 불어난 이젠 어림없다.

"자고나면 새 빌딩이니 우리도 무엇이 어디 붙어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애를 먹어요. " 지난달 말 15년 경력이라는 한 택시기사조차 길을 못찾아 기자를 태운 채 시내를 몇차례 뱅뱅 돌았다.

상하이 발전의 핵인 푸둥(浦東) 루자쭈이(陸家嘴)금융무역구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탕천(湯臣)골프장. 그 주위로 월세 6천~1만달러의 고급 빌라와 아파트가 끊임없이 들어선다.

무슨 까닭일까. "상하이는 현재의 상품뿐만이 아니라 미래라는 시제(時制)까지 상품으로 팔고 있지요. " 상하이 한국무역관 이종일(李鍾一)관장. 상하이의 미래를 장밋岵막?보기에 미래의 가치까지 계산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상하이 사회과학원 왕렁이(王冷一)박사에 따르면 상하이 발전 전략은 크게 3단계로 이뤄졌다. 먼저 85년 '상하이 경제발전 전략요강' 이 마련됐다.

그러나 말만 많았을 뿐 행동은 적었다. 대도시 상하이가 실패할 경우에 올 충격을 우려한 중국 지도부가 상하이에 앞서 선전등 남부 지역의 특구를 시험했기 때문이다. 이 특구 운용이 성공적이란 평가가 내려진 뒤에야 상하이를 본격 개발하자는 결정이 이뤄졌다.

덩샤오핑(鄧小平)은 87년부터 3년동안 춘절(春節.설)을 상하이에서 보내면서 중국 경제개발의 장기전략을 구상했다.

그리고 중국경제의 견인차로 선전이 아닌 상하이를 꼽았다. 상하이에서 양쯔(揚子)강 유역을 거쳐 중서부 내륙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중국 경제발전계획이다.

이에 따라 90년 푸둥 개발이 확정된 게 2단계. 3단계는 95년 21세기 맞이로 준비됐다. 쉬쾅디(徐匡迪)상해시장은 이같은 발전 전략을 뉴욕 등에 견줄 선진.대도시로의 도약이라고 요약했다.

상하이 학자들은 뉴욕-런던-상하이가 향후 세계를 연결하는 거점망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상하이 공업. 금융.무역.첨단과학분야는 물론 패션에서도 21세기 아시아를 대표할 대도시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복안이다. 정부차원에선 외자도입과 세제, 수출 등에 각종 혜택이 주어졌다.

그러나 더 중요한 자금줄은 거대한 화인(華人)네트워크. 옌안시루(延安西路)1백29호의 상하이화교빌딩이 그 중심으로 상하이 귀국화교연합회 창립 40주년 기념을 겸해 96년 문을 연 이 25층 빌딩은 상하이 화교의 본산이다.

개혁.개방후 20여년간 상하이로 유치된 외자의 70%가 바로 이 화교들에 의해 이뤄졌다. 상하이내 각 화교지부가 운영하는 기업수만도 1백여개. 상하이 중국과학원 원사들 68명 중 절반이 넘는 35명이 화교 인사들이다. 화교는 상하이의 발전을 이끄는 머리 역할도 맡는 셈이다.

화교조직은 거미줄 같다. 민간조직인 교련, 상하이 시정부 교무(僑務)판공실, 국회격인 인민대표대회의 화교사무위원회, 정협(政協)내 화교위원회, 화교만이 당원이 되는 지공(致公)당 등 모두 5개 조직이 이중 삼중 얽혀 있다.

교련의 쩡화쑹(曾華嵩)선전부장은 이들이 매년 최소 2~3차례 연합 회의를 열어, 화교와 상하이 발전 전략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정부가 끌고 화교가 밀어주는 상하이 발전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인가. 일단 겉으로 드러난 것은 상하이에서 충칭(重慶)으로 이어진 양쯔강 유역의 70여개 도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이다.

연안의 개혁개방 성과를 중서부 내륙으로 전파시켜 중국 전체의 발전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겨있는 야심은 더 웅대하다. 최근 중국 학계에선 T자형 발전 전략이 논의 중이다. 용 꼬리인 충칭으로까지 파급된 상하이의 발전 원동력이 남쪽인 윈난(雲南)성 쿤밍(昆明)과 멀리 티베트 자치구까지 퍼지도록 정치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10개국에 이웃한 윈난성, 네팔과 멀리 인도와도 연결될 티베트자치구를 양쯔강 개발의 연장선상으로 끌어들여 아세안과 인도를 파고드는 중점 기지로 활용하자는 계산이다. 인도차이나 반도마저 중화경제권에 편입시키겠다는 거대한 야심이다.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이 지난해 제시한 21세기 중국의 청사진에 따르면 ▶2010년까지 국민총생산을 두배로 늘려 인민의 소강(小康.일상생활에 걱정이 없는 상태)생활 유지▶그 다음 10년, 중국공산당 창건 1백주년엔 국민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각 제도 완벽 정비▶21세기 중엽, 중국건국 1백년땐 부강.민주.문명의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로 건설한다는 것이다.

세계적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네덜란드 그로닝겐대)교수는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천15년 9조4천억달러에 달해 9조3천3백억달러에 이를 미국을 추월,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의 중심축으로 성장해 중화의 옛 영화를 되찾겠다는 중국인들의 21세기 도전이 지금 상하이를 출발점으로 이미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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