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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신종 플루, 한 달이 고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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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에 감염돼 치료를 받아 오던 26·43·76세 여성, 84세 남성이 27일 숨졌다. 이틀 새 9명이 숨진 것이다. 43세 여성을 제외한 3명은 신종 플루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총사망자는 28명으로 늘었다. 2명의 노인은 고위험군이었고 26세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비고위험군 환자 사망자가 4명이 됐다.

하루 확진 환자가 4000명을 넘었다. 지난여름 몇십 명 정도 늘어날 때와 차원이 다르다. 그때와 달리 우리 주변 곳곳에 바이러스가 퍼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본부 박기동 박사는 “겨울을 두 번 겪으면서 하루에 10만 명 정도 환자가 발생해 인구의 80%가 걸린 뒤 끝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분간 감염자가 더 늘고 중환자나 사망자가 늘어나는 게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관건은 얼마나 전파 속도를 늦추고, 얼마나 중환자나 사망자를 줄이느냐다.

신종 플루의 주요 전파자는 학생이다. 학생에 대한 백신 접종은 다음 달 중순 시작된다. 보건복지가족부 이덕형 질병정책관은 “학생의 절반가량이 맞아야 확산 속도를 늦출 수 있는데 이때가 다음 달 말이다. 항체가 생기면서 전파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유행 여부는 앞으로 한 달에 달려 있다. 그동안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학생이 의심증세가 있을 경우 진료를 받고 집에서 쉬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발등의 불은 환자들이 거점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다. 지난주 초부터 병원마다 하루에 수백 명씩 몰리면서 진료 능력에 한계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조우현 원장은 “소아과 의사 9명이 3명 한 조로 오전·오후·밤 진료를 하고 있는데 환자가 계속 몰리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오명돈(감염내과) 교수는 “거점병원의 외래진료 처리 능력에 한계가 왔고, 이로 인해 자칫하다가는 고위험군 환자를 놓칠 수 있다”고 했다.

거점병원 환자의 대부분은 경증이다. 26일 서울대병원을 찾은 150여 명 중 입원한 사람은 없다. 거점병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두 가지. 학교나 직장에서 진단서나 확인서를 요구하는 데가 많아 확진 검사를 받으러 온다. 동네 의원에서는 검사할 능력이 없다. 질병관리본부 전병율 전염병대응센터장은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고 처방전이나 영수증으로 대체하면 굳이 거점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거점병원에서는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를 탈 수 있지만 동네 의원은 처방전을 받아 거점약국을 찾아가야 한다. 불편하고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정부가 28일 긴급대책을 통해 30일부터 모든 약국이 타미플루를 취급하게 했으나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보건 당국 관계자는 “보건소가 타미플루를 공급하고 재고를 관리해야 하는데 업무 과다로 인해 그리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다가 허탕 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복지부 고시를 바꿔 거점병원처럼 타미플루를 동네 의원에서 탈 수 있도록 의약분업 예외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 직하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중환자와 사망자 줄이기다. WHO 박기동 박사는 “타미플루는 중증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 주고 사망자를 줄인다”며 “재고가 바닥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끼지 말고 써야 한다”고 말했다. 입원실과 장비 확충, 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전국 472개 거점병원의 병상은 8980개. 그리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중환자는 대학병원이 맡아야 하는데 환자가 몰리면 병목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신종플루 환자가 일반 병실에 입원하는 데 대한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5명의 입원환자가 있는 경남의 한 거점병원은 신종 플루 환자를 일반 폐렴 환자라고 둘러대고 있다. 이 병원 원장은 “진료는 거점병원이 하되 입원은 국공립병원이 맡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환자가 급증하면 인공호흡기 수요가 급증한다. 전국 종합병원·대학병원이 보유한 인공호흡기는 5291대. 복지부 이덕형 질병정책관은 “인공호흡기가 부족할 것으로 보여 250개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2월 초에나 공급될 것으로 보여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신종 플루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경계한다. 서울대병원 오명돈 교수는 “평소 독감 시즌에 하루에 3명가량 숨진다. 신종 플루 바이러스의 독성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사망자가 일반 독감 수준을 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한정된 의료 자원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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