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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매는 앞치마가 어색했죠, 하지만…

중앙일보

입력


바야흐로 부부가 함께 경제활동을 하는 ‘맞벌이 시대’다. 하지만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아내의 몫으로 떠밀리는 경우가 대부분. 지난 17일 가정의 양성평등 의식을 확산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요리교실에 넥타이 대신 앞치마를 두른 아빠들이 ‘주부 체험’에 나섰다.

오늘은 아빠가 요리사!
용인시 보정동 용인푸드직업전문학교의 한 실습실. “아차, 참기름 넣는 걸 깜박했네!” “깻잎부터 깔아야 한다고 했나요?” 수강생들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정갈하게 정돈됐던 싱크대 위 식재료와 기구들은 어느새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황금 같은 주말. 휴식 대신 요리배우기를 선택한 아빠들의 모습이다.

이 요리강좌는 여성부 지원으로 경기도새일센터가 진행하는 ‘아빠요리교실’이다. 강좌는 단순히 요리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강생들에겐 미션이 있다. 실습한 요리로 가족의 점심식사를 차려야 한다. 3시간 예정이었던 레시피(조리법) 소개·요리시연·실습은 1시간이나 당겨진 낮 12시에 끝났다. 강좌를 맡고 있는 조은철씨는 “다른 아빠들보다 먼저 식사를 차려내기 위한 수강생들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보통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끝난다”고 귀띔했다.

요리교실에 도착하면 아빠와 가족은 제각기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아빠는 요리강좌가 진행되는 실습실로, 엄마와 자녀는 건너편 강의실에서 케이크·쿠키를 만들며 아빠의 요리를 기다린다. 나홀로 차려야하는 점심상인 셈이다. 강좌는 재료 씻기·손질부터 불을 조절하는 방법까지 꼼꼼하게 진행된다.

“맛있다” 가족 말에 뒷정리도 즐겁게
모두가 이렇게 ‘준비된 자세’로 시작하는 건 아니다. 이날 수강생은 10명으로 연령대는 30~40대. 이들이 이곳까지 온 과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스스로 참여한 아빠’와 ‘마지못해 참여한 아빠’다. 박근형(42·분당구 서현동)씨는 “가족 모두가 함께 요리하는 줄 알았다”며 당황스러워했다. “앞치마도 처음 매보는 것”이라는 박씨는 “미리 설명을 해주지 않은 아내가 조금은 원망스럽지만 기왕에 이렇게 된 것, 가족에게 멋진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반대로 “재밌을 것 같아 이웃 가족까지 함께 오자고 했다”는 김외석(39·기흥구 상갈동)씨는 직접 수강신청한 경우다. 이밖에 얼마 전 취직한 아내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줄 요량으로, 아내의 잔소리에 마지못해,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기 위해서 등 참여 명분도 다양했다.

오전 11시 30분. 1등으로 요리를 마친 김성배(43·기흥구 상갈동)씨가 캘리포니아롤·해물야끼우동이 담긴 접시를 들고 가족이 있는 강의실로 이동했다. “어머, 이거 정말 당신이 만들었어? 나보다 더 잘하네~” 김씨의 음식을 맛본 아내 김은하(38)씨가 탄성을 자아냈다. 곧이어 다른 아빠들도 접시를 들고 차례로 등장했다. 다른 가족들의 시선도 일제히 입구로 향했다. “설거지도 한 번 해본 적 없다”는 차상도(35·분당구 금곡동)씨가 만든 울퉁불퉁한 모양의 캘리포니아롤. 하지만 딸 차혜연(5)양은 “엄마가 해준 것보다 맛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빠들의 주부 도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족들이 깨끗하게 비운 접시의 설거지와 실습실 뒷정리를 해야했다. 정리정돈도 아들과 함께한 김외석씨는 “가는 길에 장을 봐 저녁식사도 차려보겠다”며 즐거워 했다.

강좌는 11월 28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전10시부터 3시간동안 진행된다. 참가비는 1만원. 자세한 사항은 경기여성 e-러닝센터 홈페이지( http://www.ggw.or.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31-899-9183

[사진설명]김외석씨 가족이 지난 17일 특별한 점심식사를 즐겼다. 메뉴는 김씨가 ‘아빠요리교실’에서 만든 캘리포니아롤과 야끼우동이었다.

< 이유림 기자 tamaro@joonjanj.co.kr >

< 사진=김진원 기자 jwbest7@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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