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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을 걱정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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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테네 올림픽 마지막날 태권도 시합을 보면서 불안했다. 문대성 선수의 상대가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가진 그리스 선수였기 때문이다. 덩치도 더 크고 공격적인 데다 한국인 코치의 지도를 받아왔다고 한다. 사전에 미국 경제학자들이 내놓았던 메달 전망은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4년 전 시드니 올림픽 때 각국의 순위와 메달 수를 거의 정확하게 맞혔다고 해서 족집게로 통하던 남녀 두 교수의 전망으로는 한국과 그리스가 각각 총 27개의 메달을 따서 공동 8위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메달에 있어서는 그리스가 10개를 획득해 6개의 한국을 앞지른다고 점치고 있었다. 그런데 태권도 시합 직전까지 한국은 이미 8개의 금메달을 따놓은 데 비해 그리스는 6개에 그치고 있어 태권도의 금메달이 그리스로 가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승부는 일찍 결판이 났다. 문 선수가 전광석화와 같은 뒤후리기로 니콜라이디스를 KO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의 그리스에 관한 메달 전망은 크게 빗나갔다. 이들은 전망을 하면서 네가지 변수를 주로 활용했다. 인구, 1인당 소득, 과거 성적, 그리고 개최국으로서의 이점이 그것들이다. 그리스의 경우 이들이 개최국 이점을 과대평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은행의 최근 자료를 통해 1인당 소득 얘기를 조금 더 해 본다면 2002년 중 그리스가 1만1660달러로 세계 48위이고 한국은 1만1400달러로 49위라고 한다. 지금은 난형난제이지만 1980년에만 해도 사정은 사뭇 달랐다. 그리스의 소득은 5000달러에 육박하고 있어 우리보다 세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81년 사회당(PASOK)이 집권하면서 경제는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농업과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큰 나라다. 풍부한 관광자원과 지리적 특성 때문에 관광업과 운수업에서 많은 돈을 벌어 왔다. 아울러 군사전략상 요지여서 선진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국내총생산의 4% 내외의 보조금을 유럽연합(EU)으로부터 받고 있다. 또한 해외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의 공식 또는 비공식적인 송금액이 엄청난 액수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정부의 좋은 정책이 따라주었다면 그리스 경제는 일찍부터 꽃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당의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책들이 경제성장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90년 말 내가 그리스에서 투자환경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됐던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출퇴근 시간 중 아테네 시내버스의 요금은 무료로 되어 있었다. 세금은 일단 높게 매겨 놓고도 국민의 반발이 두려워 제대로 걷지를 않아 탈세가 관행이 되었다. 그러면서 분배를 우선시한다고 복지혜택을 확충하다 보니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회당을 지지했던 노조는 활개를 치고 있었다. 망해가는 민간기업은 정부가 우리나라의 산업은행 비슷한 기구를 통해 인수하고는 노조대표들을 새 경영진으로 들어 앉히곤 했다.

경제가 어지러워지고 부패가 만연하다 보니 유권자들도 사회당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껴 지난 봄 선거에서는 중도 우파인 신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시켰다.

4년 후 베이징(北京) 올림픽 때에는 한국과 그리스가 경제와 메달 수에 있어 어느 위치에 가 있을까? 한국이 좌파 성향의 정책을 도입하고 그리스가 우파 시책을 실시해 간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하면서 걱정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중국이다. 이번에 러시아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중국이 경제력과 개최국의 이점을 기반으로 올림픽에서 압도적 승리를 이루고 그 여세로 역사왜곡까지 본격화하는 것은 아닐는지.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