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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여보, 우리 러브 호텔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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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신혼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신혼이 별거야. 이렇게 오붓하게 지내면 되지."
닭살스러운가. 아니, 부부의 정이 새록새록 깊어진다.
러브 호텔을 이용하는 이준상씨 부부는 "주말마다 어디론가 훌쩍 여행 떠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촬영협조=렉시 호텔]

러브 호텔엔 사랑이 없다? 아니다. 요즘 러브 호텔엔 진짜 사랑이 있다. 그것도 묵을수록 깊은 맛을 더하는 사랑이.

프리랜서 사진작가 이준상(36)씨. 그는 결혼 3년차로 갓 돌을 지난 딸아이를 두고 있다. 그런데 주말이면 러브 호텔 헌팅에 나선다. 물론 아내와 함께다. "처음엔 남세스럽게 그런 데를 가느냐고 아내가 손사래를 쳤죠. 그런데 막상 데려가니 '세상에, 진짜 럭셔리 호텔이 따로 없네'하며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요즘엔 아내가 먼저 눈짓을 한다니까요."

전자제품 부품업체 사장인 김모(48)씨는 아예 자신을 '러브 호텔 매니어'라고 소개한다. "칠순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큰애는 대학생이고요. 아무리 내일모레가 오십이라지만 저희라고 부부만의 시간을 갖고 싶지 않겠습니까." 연예인 서갑숙씨도 자전적 에세이 '나도 포르노그라피…'에서 전 남편과 감정의 괴리가 싹튼 한 이유로 "시어머니의 기척 때문에 모처럼 피우려던 사랑의 불꽃이 그만 사그라졌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김씨는 매월 마지막 주를 '러브 호텔 가는 날'로 정했다.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 회원들이 올려놓은 '후기'를 읽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단다.

진짜 그럴까. 경기도 고양시 일산 주민들의 격렬한 러브 호텔 반대 시위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그래서 이씨가 소개한 서울 강남의 L호텔을 찾아가 봤다.

방 한쪽이 온통 장미로 장식된 객실엔 호텔 매니저가 풍선을 걸고 샴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 기념일이라며 남편분이 인터넷을 통해 이벤트를 신청해 와서요. 기념일이라며 찾아오는 부부 손님이 일주일에 다섯 쌍은 될걸요."

객실은 테마별로 각양각색이었다. 열정을 뜻하는 레드룸, 고요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블루룸…. 자쿠지 욕조와 스팀 사우나, 비데, DVD 플레이어, 초고속 인터넷 시스템은 기본이었고, 특실엔 100인치 와이드 스크린도 설치돼 있다. 하루 숙박료는 6만~9만원. 그래도 여전히 불륜의 장소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저희는 딱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요즘엔 정말이지 불륜 커플은 열에 한 쌍도 안 돼요."

러브 호텔이 달라지고 있다. 퇴폐.매춘의 온상이라는 음습한 껍데기를 벗고 당당한 사랑의 장소로 탈바꿈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 둥지를 튼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요, 달랑 놓인 침대와 성적 자극을 강요하는 장치를 걷어내고 또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변화의 중심축이다. 주인공은 부모와 자식의 시선에서 자유롭고싶은 부부와 건전한 청춘. 그런가 하면 대학생들의 스터디 장소로, 쾌적한 휴식 장소로, 음향이 훌륭한 영화관람 장소로도 러브 호텔은 변모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탈선이 만연한 러브 호텔이 적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러브 호텔이 진화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 어차피 제도나 문화를 똑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건 사회구성원들의 몫이 아닐까. 혀를 끌끌 차고, 아이들 교육 걱정하기에 앞서 이번 주말 아내에게, 남편에게 이렇게 한번 말해 보는 걸 어떨까. "여보, 우리 러브 호텔에 한번 가 볼까?"

글=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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