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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조각가 전뢰진 교수 고희 기념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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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40여년간 변함없이 부드러움과 서정성이 충만한 돌 조각을 만들어온 '돌의 시인' 원로조각가 전뢰진(70)홍익대 명예교수가 23~30일 인천시 계산동 경인여대에서 고희 기념전을 갖는다. 전교수는 부산 태종대 절벽 위에 우뚝 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욱 하는 충동을 막아주는 모자상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사실 그가 고희를 맞은 건 지난해였다.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 전후 홍대로 옮겨 윤효중 선생에게 조각을 사사한 그는 국전 초대작가상.예술원상.대한민국 화관문화상 등 각종 명예로운 상을 휩쓴 우리 조각계의 상징적 인물. 전교수의 고희전을 성대하게 열자는 주변의 권유가 빗발친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를 붙잡고 있는 일거리 하나가 고희전을 허락치 않았다. 현재 경인여대 교정에 서 있는 대형 조형물 '낙원가족' 작업 때문이었다. 평소 그의 작품이 주는 푸근함에 매료돼 팬을 자처하던 김길자 학장의 부탁으로 2년째 매달리고 있던 차였다.

유명작가라면 서울에서 폼새를 갖춰 성대하게 치르게 마련인 기념전을 대학에서 열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교수는 '낙원가족' 에 착수하기 전에도 이 학교에 교훈을 상징하는 조각품 4점을 실비로 제공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15점은 96년에 만든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올해 작업한 결실이다.

"일단 돌을 쪼기 시작하면 몸이 풀리는 상쾌함을 느낀다" 며 왕성한 창작열을 보이는 그는 일주일에 한번 3시간 출강하는 것을 제외하면 서울 신림동 반지하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보통 작가들이 맨들맨들한 뒷처리를 위해 돌을 갈아버리는 것에 비해 그는 돌을 쪼는 방식을 택하는 특이함으로도 유명하다. 정이 지나간 자리의 우둘투둘한 자연미를 사랑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차가운 돌의 느낌을 작가의 공력으로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려는 시도가 그의 인체상이 갖는 포근함과 단아함의 비밀인 셈이다.

이번 전시는 준비 과정에서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발로 뛰어 더욱 눈길을 모은다. 조각계의 어엿한 중진으로 자리잡은 강관욱.고정수.유영교씨를 비롯, 한진섭.김경옥씨 등 5명의 제자들이 전시회 도록을 만들고 작품도 특별출품해 그간 전교수를 중심으로 이어져온 구상 조각의 계보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내 작품은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다" 며 작가로서의 포부를 밝히는 그는 지금까지 한달에 2점꼴로 8백여점의 작품을 만들었으며, 내년에도 이 길다란 목록에 신작을 추가할 계획이다. 032-545-2093.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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