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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앞 골목길도 주차막으면 벌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비좁은 주택가 뒷골목이 총성없는 '주차전쟁' 으로 시끄럽다.

사소한 언쟁이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근본 문제는 주차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이웃간의 이해와 준법정신 부족도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한몫 하고 있다.

사소한 주차문제로 '이웃사촌' 은 고사하고 '견원지간(犬猿之間)' 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당국이 자기집 앞 골목길에 대해 불법 적치물로 다른 사람의 주차를 막으면 과태료를 매기는 원칙적인 법집행을 추진하고 나섰다.

◇ 실태〓지난달 20일 서울 은평구에 사는 李모(33)씨는 관악구 봉천동 친구집을 찾았다가 이웃집 사람과 주차문제로 심하게 다툰 기억 때문에 지금도 씁쓸하다.

5m도 안되는 좁은 골목길에 집집마다 간판.물통.시멘트.쇳덩이에 '주차 절대금지' 라는 문구를 써붙여 놓은 상태였다. 이에 할 수 없이 옆집 주인이 설치한 간판을 치우고 주차했다가 주인과 말다툼을 벌였던 것. 당시 이웃집 주인은 "내집 앞인데 왜 간판까지 걷어치우고 차를 함부로 댔느냐" 며 호통을 쳐 감정싸움으로 비화됐다.

서울 노량진경찰서는 지난 9월 이웃한 두집 가장끼리 주차문제로 시비 끝에 난투극을 벌인 혐의로 양쪽 가족 구성원 5명을 폭력혐의로 입건하기도 했다.

이같은 문제는 승용차는 갈수록 느는데 주차장 확보는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서 비롯된다.

서울시의 경우 주택가 주차수요는 1백99만대를 넘지만 주차가능 대수는 1백13만대분에 그치고 있다.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이 57%에 그치다 보니 86만여대는 매일 주차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서울시 주차계획과 관계자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한계상황" 이라고 진단했다.

◇ 강력한 법집행〓서울시는 21일 이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주민들간의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도록 관련 법규정을 강력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시는 우선 내집 담장 앞이라 해도 불법 적치물을 설치해 다른 사람의 주차를 막는 행위가 도로법 40조 및 86조 2항에 따라 최고 50만원의 과태료 부과대상이란 점을 집중 홍보키로 했다. 집앞 도로는 도로법상 공도(公道)에 해당하므로 거주자우선 주차구역 외에는 집주인의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건설행정과 관계자는 "송파.영등포구 등에서 모범적으로 계도활동을 펴고 있어 다른 자치구에도 이같은 방안을 곧 추진토록 할 것" 이라며 "이르면 다음달 초부터 강력한 단속에 나서도록 하겠다" 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서울 송파구는 22일부터 '주차장애 시설물 특별정비' 에 들어간다. 송파구 박신규(朴信奎)도시정비과장은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내집 앞이라고 주차금지 표지판을 무분별하게 설치해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며 "자진 정비를 유도한 뒤 상습적으로 다른 사람의 주차를 방해할 경우 고발 조치키로 했다" 고 밝혔다.

◇ 논란〓'서울시와 구청들은 내집 담장 앞이라 해도 집주인은 독점적인 주차를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원칙을 '법대로' 적용할 태세다. 문제는 그동안의 관행으로 인해 자칫 '법대로 하겠다' 는 당국의 방침이 또다른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시민 李진석(30.서울 봉천동)씨는 "집앞에 차가 없는 데도 다른 차량의 주차를 막아온 집주인들의 행태를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그러나 徐정우(50.서울 가락동)씨는 "잠깐 주차한다면서도 전화 번호조차 남기지 않는 우리 사회의 후진적 주차문화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법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주차시비가 더 잦아질 수 있다" 고 우려했다.

장세정.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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