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7. 소설 - 이윤기 '보르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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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보르항'은 몽골어로, 하느님 또는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밝은 산'을 뜻한다는 설도 있다. 소설 제목의 보르항은 보르항산을 말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300㎞ 떨어져 위치한 산으로 칭기즈칸이 묻혀 있다는 곳이다. 주인공 '나'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성스러운 산을 찾아가고 싶어하고, 보르항산이 그런 곳이다. 내가 몽골과 보르항산에 끌리는 이유는 한반도와 몽골이 같은 유라시아 대륙, 우랄 알타이 어족으로 묶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보르항 행은 순탄치 않다. 헬기까지 동원했지만 여성의 접근을 꺼리는 현지인(헬기 조종사)들의 관습 때문에 먼 발치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수고의 보람이 있어 보르항 정상에서 우리 일행은 서낭당과 너무 흡사한 돌탑 '어워'를 발견한다. 정작 여행은 만족스럽지 못한 게 되고 만다. 한국의 한 종교 단체의 극성스러운 선교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동서문학' 2003년 가을호 발표>

◆ 이윤기 약력
-1947년 경북 군위 출생
-77년 중앙일보로 등단
-소설집 '나비 넥타이''두물머리'
-98년 동인문학상, 2000년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보르항을 찾아서'

이윤기씨의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보르항을 찾아서'는 문화인류학적 탐사 보고서이자 기행문을 뚝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소설이다. 작품 속에는 신화에 대한 그의 풍부한 지식과 문화인류학 문헌자료 등이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또 보르항을 찾는 여정이 체험처럼 실감난다.

이씨는 "소설이라고 얘기하기 미안할 정도로 허구가 별로 없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작품에 등장하는 두 번의 보르항 행도 2002년, 2003년 이씨의 경험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다. 이씨는 "어느 틈엔가 우리는 남의 나라를 찾아가 계몽하려 하고 자신이 믿는 종교를 퍼뜨리려 하고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반감을 노골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반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겨우 벗어나 칭기즈칸과 샤머니즘 등 자기 것을 찾아가고 있는 몽골이 우리를 포함한 바깥의 간섭으로 인해 망가질 것 같은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국민소득을 올리기 위한 공업화, 이런 저런 종교 단체들의 선교 활동이 진행되면 뿌리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몽골의 전통적인 모습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있는 읽을거리지만 기행 경험에 치우쳐 소설적 요소는 적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씨는 "사실적인 기행문 속에 허구를 끼워넣어 독자들을 깜빡 속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종의 형식실험으로 이해해달라"고 답했다. 그는 "(황순원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는 사실은)내가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 아닌가. 즐겁고 고마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연륜이 붙어 있는 소설이다. 사회적인 화두를 문학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소신있게 드러내면서도 편안하다. 촌철살인의 미학을 갖췄다"고 평했다.

하씨가 읽은 '보르항을 찾아서'의 화두는 '우리 안의 편견과 위선'이다. 하씨는 "가깝게는 우리의 정치사, 멀게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질타로도 읽힌다"고 지적했다.

하씨는 "여행담이어서 소설적 긴장이 덜한 측면이 있지만 그런 점을 강력한 주제의식으로 충분히 메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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