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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접대'산업의 기술 도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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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뉴욕의 양키스 구장이 미국 프로야구의 상징이라면, 일본은 단연 도쿄(東京)돔이다. 요미우리자이언츠의 홈구장으로 그 자체가 구경거리인 멋진 실내 야구장이다.

여기에는 28개의 귀빈실이 있다. 도쿄돔이 지난 88년 문을 열면서 기업들을 상대로 임대했는데, 연간 사용임대료는 크기와 위치에 따라 2천만엔에서 3천만엔. 그런데도 수십개의 기업들이 대기자 명단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소위 로열 박스라는 곳. 지난번 한.일프로야구 대표전 때 가봤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별 건 아니었다. 맥주 마셔가며 담소하는 소파가 마련돼 있고, 샌드위치나 카레라이스 같은 간단한 식사도 나왔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곳에 앉아 '폼' 을 잡는 것일까. 각양각색이었다. 유통업체의 경우 대리점 사장들을 모시기도 하고, 유명기업들은 정계.관계의 실력자, 때로는 외국 귀빈들도 모신다고 한다. 목좋은 곳을 전세내 자기들 손님한테 생색내며 접대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얼마든지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프로농구의 특별 좌석권을 가지면 자리만 좋은 게 아니다. 별도의 식당에서 고기를 썰고나서 시합장에 안내된다. 지근거리에서 유명선수들한테 손쉽게 사인도 받아낼 수 있다.

US오픈 같은 유명 PGA골프경기 때는 IBM.AT&T 등의 저명기업들이 텐트째로 좋은 자리들을 차지해버린다. 물론 자기 회사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접대해야 할 필요가 있는 비즈니스의 대상들을 엄선해 초청한다. 시가를 물고 포도주를 마시며 스타플레이어들의 샷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공연한 사람들을 불러다 자선사업할 리 만무하다. 이 모두가 필요에 의해 하는 접대행위요,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을 모셔다 잘봐달라고 하는 비즈니스다.

실제로 이런 식의 접대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별도로 따져볼 일. 모르긴 몰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경비가 상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입장권 대신 차라리 현금을 쥐어주는 편이 싸게 치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 아무리 비싼 대접을 하기로서니 운동경기장에서 대접해봤자 상식선을 넘기 어렵다. 더구나 이같은 접대행위가 밀실이 아닌, 대중행사 속에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것 아닌가.

도쿄돔에 앉아 야구를 보면서 우리의 접대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풍토 자체가 접대를 해야 일이 수월해지고 접대를 받아야 잘 해주는 것이 여전한데, 무슨 수로 접대를 없애나. 누군들 각별한 접대를 받고나면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오히려 접대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대안이요, 상책이 아닐까. 허지만 고급접대일수록 고도의 노하우 없인 안된다. 접대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고 합리적으로 해내려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기술이 국내에 없으면 이것 역시 서슴지 말고 선진국으로부터 기술도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에게 좋다.

접대를 전문적으로 받는 정치세도가나 끗발 센 관료들은 외국 사례를 잘 익히면 나중에 쇠고랑 차는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요, 접대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들 역시 국제기준의 접대기술을 습득해야 뒤탈을 예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 접대도 어엿한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할 때가 됐다. 그동안의 접대문화는 술집산업.퇴폐문화만을 조장 발전시켜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만 결딴내는 술접대가 골프접대로 바뀐 것이 그나마의 진일보라고나 할까. 이제 그 정도론 안된다.

어차피 기업들이 해야 할 접대, 써야 할 접대비를 대중스포츠나 예술문화쪽으로 연결시켜 산업화하는 고리를 개발해내야 한다. 그쪽 장사도 시켜주고, 접대받는 사람 기분도 맞춰주고 하는 방법 말이다.

지금까지는 이른바 향락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지원, 뒷받침해왔지만 이젠 접대의 장(場)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접대산업 자체가 자연히 달라질 테니 말이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야구장에 로열박스를 멋있게 만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스포츠든 문화사업이든 돈버는 방법들, 즉 소프트웨어가 함께 발전돼야 한다.

한 마디로 상품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야 손님이 꼬이고 접대산업도 번성할 수 있다. 기술도입은 제조업만이 필요한 게 아니다. 부정 타는 뇌물 대신 건전한 접대를 개발하는 기술도입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장규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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