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양복 만들던 ‘소공동 재단사’ 윤인중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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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체형을 본뜬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는 박 전대통령의 신체 사이즈가 꼼꼼히 적혀 있다. [김태성 기자]

서울 소공동의 양복점 세기테일러에는 누렇게 바랜 종이가 10여 장 보관돼 있다. 너덜너덜하게 닳아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이 중 한 장에는 ‘1978년 박정희 대통령 각하’라고 씌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체형을 본뜬 종이다. 박 대통령은 서거 전까지 5년 동안 이 가게에서 양복을 맞춰 입었다. 이 때문에 가게 주인 윤인중(65)씨도 자연스레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박 대통령은 1년에 한두 벌의 옷을 맞췄는데 옷감은 국산을 고집했다고 한다. 당시 고위층 사이에선 외제 원단으로 만든 양복을 입는 게 유행이었다. 직물이 촘촘하게 짜여 있고, 감촉도 부드러워 국산보다 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씨는 “박 대통령의 선택은 언제나 값싼 혼방 국산제품이었다”고 회상했다. 주로 감색이나 짙은 회색에 줄무늬가 들어간 것을 선호했다. 키가 작아서 상의를 약간 짧게 입는 편이었다고 한다.

윤씨는 박 대통령의 고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다.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공식 행사에서 입을 이브닝 코트를 새로 맞추는 과정에서다. 턱시도보다 더 격식 있는 이브닝 코트의 옷감은 당시 한국에서는 생산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Made in England’란 글씨가 쓰인 영국산 원단을 들고 청와대로 갔다. 이를 본 비서실장은 “원단을 그대로 가져갔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다”며 윤씨를 말렸다. 결국 영어가 쓰인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고서야 박 대통령에게 옷감을 보일 수 있었다.

근검 절약도 박 대통령의 오래된 습관이었다고 기억했다. 청와대 곳곳엔 ‘절전’ ‘절수’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집 안에는 전등이 많았는데, 박 대통령은 항상 집무실 책상 위의 전등만을 켜놓고 있었다고 한다. 윤씨는 “방이 어두워 옷감을 고를 때도 항상 창가로 가야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박 대통령은 축농증 수술 뒤 갑자기 허리 둘레가 늘어난 적이 있었다. 이때도 윤씨는 청와대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섯 벌의 양복 사이즈를 늘려달라”는 주문이었다. 윤씨는 “바지 안감을 보니 너덜너덜해 새로 맞추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통령은 고집스레 낡은 양복을 수선해 입었다”고 말했다. 수선 후 박 대통령은 윤씨에게 ‘직원들과 설렁탕이라도 잡수라’면서 5만원을 건넸다고 한다.

윤씨는 박 대통령을 ‘인간 박정희’로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적인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윤씨는 “곁에서 지켜본 박 대통령은 가식이 없고 소박한 인물이었다”며 “인간적인 면모가 많았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은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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