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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월드시리즈의 꿈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그답지 않은 호들갑이었다. 평소 생각이 많고, 절제된 단어로 정리된 말투를 쓰는 박찬호였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듯 숨이 차오른 듯했다.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진 문자메시지는 감탄사(yeah! yes!) 몇 개와 “이겼다(we win)”의 반복. 흥분해서 뭔가 그럴싸하게 말할 겨를이 없다는 거였다. 하긴 경기가 끝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흥분과 열기가 식을 겨를이 없기는 했다.

그럴 만한 경기였다. 지난 20일. 그의 필리스는 9회 말 2사까지 3-4로 끌려가던 승부를 뒤집었다. LA 다저스의 마무리 조너선 브록스턴을 상대로 불씨를 살렸고, 2사 1, 2루에서 지미 롤린스가 우중간을 꿰뚫는 역전 2타점 끝내기 2루타를 때렸다. 필리스 홈구장에서의 역전 드라마였기에 더 극적이었다. 그 경기는 리그 챔피언 결정전(7전 4선승제)의 4차전이었다. 필리스는 3승째를 거뒀다. 월드시리즈 진출을 손에 다 잡은 셈이 됐고, 박찬호는 그 감격을 전하고 있었다.

필리스가 5차전을 10-4로 이겨 월드시리즈 진출이 결정된 22일, 게임 직후에 그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커다란 내셔널리그 챔피언 파티가 계속되고 있는 탓이었을 게다. 그날 박찬호는 8-3으로 크게 앞선 상황에 등판, 1이닝(7회)을 삼자범퇴로 막고, 8회 두 명의 타자에게 안타를 내주고 내려왔다. 뒤끝이 별로였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가을의 고전(fall classic)’으로 불리는 월드시리즈와 한번도 인연을 맺지 못했던 박찬호가, 드디어 그 무대에 서게 된 거다.

박찬호는 월드시리즈를 갈망(渴望)해 왔다. 메이저리그 진출 초창기 그는 선발투수가 되는 것, 승리투수가 되는 것만을 자신의 절대가치로 여겼다. 그 승리가 하나 하나 쌓여 120승이 되는 동안, 그는 게임이 주는 새로운 가치에 눈을 떴다. 한때는 ‘아프지 않고 던질 수 있는 것’, 어떤 때는 ‘메이저리그 무대에 살아남기만 하는 것’만이 그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가슴 맨 밑바닥에 남아 있는 의지는 ‘챔피언’이 되는 거였다. 그는 동양인 투수 통산 최다승(노모 히데오, 123승)기록을 갖고 싶어도 하지만, 그건 개인기록으로서의 목표다. 월드시리즈 무대에 서고, 그 경기에서 승자가 되어 챔피언이 된다는 것, 그건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아련한 목표가 현실로 이뤄지는 것이다. 드디어 오는 29일 박찬호는 그 갈망의 무대로 향한다.

박찬호는 신념과 절제, 노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성공했다. 거액의 연봉과 화려한 명예가 뒤따랐고 야구의 메이저리거뿐만 아니라 인생의 메이저리거가 됐다. 그러나 그는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다. 고교-대학 시절에도 그의 팀은 강팀이었지만 챔피언은 아니었다. 국가대표로서도 그의 팀(2006년 WBC)은 결승 문턱에서 일본에 꺾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그의 팀은 월드시리즈를 한 계단 남겨두고(2008년 다저스) 미끄러졌다. 야구에서 챔피언의 가치는 자신의 혼자 힘으로서는 불가능한, 어쩌면 그래서 더 의미 있다. 경기에 나서는 최고의 목표는 승리, 그 승리가 모여서 정점에 이르는 것이 우승이라고 보면 그 우승팀의 일원이 되는 것이 선수로서의 절대 가치다. 3년 전 마이너리그에서 은퇴를 고민했던 박찬호였기에 지금이 더 대단하다.

네이버스포츠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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