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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가른 통쾌한 포물선, 나지완의 눈물은 뜨거웠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KIA 나지완이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쏘울)에 올라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김진경 기자

24일 잠실에서 열린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

5-5로 맞선 9회 말 1사까지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타석에는 KIA 타이거즈 오른손 타자 나지완(24)이 들어섰다. 마운드에는 SK 와이번스 투수 중 가장 묵직한 공을 던지는 채병용이 서 있었다. 볼카운트 2-2에서 채병용이 던진 직구(시속 143㎞)가 높게 쏠리자 나지완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다.

맞는 순간, 나지완은 타구 대신 1루 측 KIA 벤치를 바라봤다. 홈런을 확신하고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공이 좌중간 펜스 너머에 떨어지기도 전에 KIA 선수들은 우승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타이거즈는 최종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6-5로 승리, 1997년 우승 이후 12년 묵은 한을 풀었다. SK가 정규시즌 홈런 1위(36개) 김상현, 홈런 2위 최희섭(33개)을 집중 견제하는 사이 나지완이 우승 축포를 터뜨렸다.

나지완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수상, 2500만원 상당의 기아자동차 쏘울과 3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부상으로 받았다.

나지완은 베이스를 돌 때부터 눈물을 흘렸다. 자신도 믿기지 않은 극적인 한 방.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KIA 팬들은 12년을 참았던 함성을, 또 울음을 터뜨렸다. 홈을 밟은 뒤 동료들로부터 샴페인 세례를 받은 나지완은 통곡하듯 엉엉 울었다.

최강팀 SK와의 혈전에서 KIA는 7차전 6회 말까지 1-5로 밀리고 있었다. 나지완은 6회 세 번째 타석에서 중월 투런홈런을 때려 추격전에 불씨를 댕겼고, 다시 자신의 힘으로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완성했다. 시상식이 끝나자 나지완은 다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엉덩이를 흔들며 장난도 쳤다. 어른 티를 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소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런 기질이 극적인 한 방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KIA에 입단한 그는 전형적인 장사 체형(1m82㎝·95㎏)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을 갖춘 유망주였다. 그러나 프로의 벽을 쉽게 넘지 못한 채 73경기에서 타율 0.274, 홈런 6개에 그쳤다.

황병일 KIA 타격코치는 한국시리즈 전부터 나지완을 키플레이어로 지목했다. SK가 4번 최희섭, 5번 김상현에게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3번 타자가 한 박자 먼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기대였다. 나지완은 올해 정규시즌에서 타율 0.263에 그쳤지만, 홈런 23개를 터뜨리며 성장세에 있던 터였다.

나지완은 홈런 2개를 때리기 전까지 한국시리즈 홈런 없이 18타수 3안타(0.167)에 그쳤다. 그럼에도 조범현 KIA 감독은 “나지완이 해줄 것으로 믿었다. 못했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이 아니다.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요즘 친구”라고 말했다. 끝내기 홈런 직전엔 황 코치가 “오늘은 한 방으로 결정된다. 네가 쳐봐라”고 격려했다. 스승의 기대에 나지완은 홈런으로 보답했다.

나지완은 “모두들 희섭이형, 상현이형 얘기만 해서 솔직히 섭섭하기도 했다”고 웃으며 “홈런을 친 뒤 그동안 노력하고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나지완은 2009년 가을 한층 더 성장했다. 훗날 홈런왕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600만 야구팬 앞에서 맘껏 보여줬다. 24세 소년은 홈런왕 이승엽(33·일본 요미우리)보다 타이거즈 전설 이종범(39)을 꿈꾼다. 그는 “언젠가는 이종범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 말 한마디로 팀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겠다”는 말로 긴 승부 여정을 마무리했다.

잠실=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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