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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의 세상 탐사

박정희의 책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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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책상은 소박했다. 대통령 박정희의 유품이다. 청와대 옛 본관(1993년 헐림) 1층 집무실에서 쓰던 거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나와 있다. 양수(兩袖·양편에 서랍, 1962∼79년) 책상으로 적혀 있다. 전시회는 10·26 30주년을 맞아 열렸다. 국가기록원 특별전이다.

짙은 밤색 책상은 변변한 문양도 없다. 평범하다. 그는 18년 장기간 권력 정상에 있었다. 유신은 독재체제였다. 책상은 거대한 권력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권력은 집기의 모양과 장식으로도 위엄을 드러낸다. 그 책상은 그런 통상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양쪽 4개씩 서랍만 달렸다. 위 서랍에 조그만 견출지가 그대로 붙어 있다. 서무실의 실무자용이 제격이다.

60대 초반 두 관람객이 책상 크기를 재 본다(140x86㎝, 높이 68㎝), 그리고 10·26을 떠올린다.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탄을 맞은 박정희를 검시(檢屍)했던 군의관들은 처음엔 누군 줄 몰랐다는 거야. 매고 있던 가죽벨트가 해져 있었기 때문이지. 설마 대통령이 낡은 벨트를 맬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어.”

“검소했으니 볼품없는 이 책상을 고집스럽게 썼지….”

10·26 아침 박정희는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갔다. 가기 전에 그는 책상 앞에선 비서실장 김계원의 보고를 받았다. 책상은 그의 마지막 체취를 담고 있는 듯하다. 박정희 시대를 시위하듯 버티고 있다. 그가 추구한 시대 정신은 실용과 근검이다. 그것은 한강의 기적을 이끈 리더십의 바탕이다.

전시실에 목기(木器) 세트가 있다. 66년 필리핀 방문 때 받은 선물이다. 이런 설명문이 붙었다. “정상회담 때 박 대통령은 필리핀보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시절 가난한 한국은 필리핀을 부러워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0여 개 나라가 생겼다. 그중 한국만이 정치와 경제 발전에 성공했다. 한국의 성취 모델은 ‘박정희 주도의 선(先)산업화, 양김(김영삼·김대중) 중심의 후(後)민주화’다. 필리핀은 정치와 경제의 동시 발전을 내세웠다. 하지만 경제가 엉망이 되면서 정치도 헝클어졌다. 동시 발전 모델을 성공시킨 나라는 없다. 후진국은 경제에 실패하면 민주정치의 위기를 맞는다. 그것이 세계사의 경험이다.

북한 주석 김일성의 선물 ‘금강산 선녀도’가 전시돼 있다. 72년 평양을 비밀 방문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통해 받았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잘사느냐의 경쟁을 했다. 같은 민족을 놓고 전략과 비전은 달랐다. 개방과 폐쇄, 수출 성장과 자력 갱생-. 결과는 70년대 후반 박정희의 압승으로 갈렸다. 그리고 지금 북한 주민의 삶은 극도로 고달프다. 민족이 우수해도 잘못된 리더십 아래선 고통스럽다.

책상 오른쪽에 조그만 모형 전차가 놓여 있다. 한국형 전차다. 박정희는 그걸 보면서 자주 국방의 집념을 키웠다. 미국은 제동을 건다. 카터 행정부는 유신의 인권 탄압까지 덧붙여 압박했다. 한·미 간 불화는 김재규의 시해 결심에 미묘한 영향을 줬다.

책상 위에 결재 받침대가 있다. 흠집이 나 있고 잉크 자국이 묻어 있다. 그 나무 받침대에서 경부고속도로 등 경제 건설과 국가 개조의 정신 및 전략이 설계됐다. 유신과 긴급조치의 강압적 통치도 받침대에서 정리됐다. 받침대가 살아 숨쉰다. 그 시대의 영욕(榮辱), 성취와 좌절을 기억하는 듯하다.

박정희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휘호로 썼다. 그것은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지도력이다. 미국 대통령 문화의 정수다. “잘한 것을 다듬어 다음 세대에 비전과 지혜로 전수하고, 잘못은 증오로 키우지 말고 경계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이승만에서 노무현까지 대통령들 모두가 그 역할을 했다. 공과(功過)의 크기와 깊이는 물론 서로 다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온고지신의 통합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동력이다.

중앙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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