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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누룩과 지하수, 세 가지로만 빚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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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20면

부산 금정산성토산주 양조장에서 고두밥을 짓고(왼쪽) 누룩을 만들고 있다(오른쪽). 부산=송봉근 기자

13일 오전 7시 부산시 금정산성 마을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는 누룩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로 알려진 (유)금정산성토산주에서는 일주일에 4~5번 아침마다 전통 방식으로 누룩을 만든다. 60년째 누룩을 만들고 있는 전남선(78)씨를 포함한 다섯 명의 직원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반죽용 신발을 신었다. 팔과 무릎을 앞뒤로 흔들며 준비운동도 했다. 직원들은 “하루에 300장씩 100%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몸을 안 풀어주면 다음 날 근육이 뭉쳐 일을 못 한다”고 했다.

막걸리의 전통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준비운동을 마친 직원들은 공장 한편에 쌓여 있는 생밀 부대를 가져와 기계에 집어넣고 굵게 간 다음 물과 함께 반죽했다. 어느 정도 반죽이 완성되자 조금씩 떼 내 피자 모양으로 넓게 폈다. 반죽된 누룩이 어느새 바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반죽이 다 된 누룩은 50년 넘게 사용 중인 바로 옆 누룩방으로 옮겼다. 전남선씨는 “1주일간 누룩방에서 발효시킨 후 건조하면 완성된다”며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은 누룩방의 온도를 알맞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주일 후 완성된 누룩은 100m 정도 떨어진 (유)금정산성토산주 사무실로 옮긴다. 사무실과 붙어 있는 공장에서 술을 담그기 때문이다. 유청길(51) 사장은 “똑같은 재료로 누룩을 만들어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며 “그만큼 잘 만들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된 누룩은 분쇄한 뒤 고두밥과 섞어 술 탱크에 넣는다.

이때 다른 재료는 전혀 넣지 않고 지하 250m 지하수만 함께 넣는다. 이 과정에서 다른 막걸리는 누룩이 아닌 입국(인공적으로 만든 효모)을 밥과 함께 넣는데, 이 점이 전통 방식이랑 다른 점이었다. 커다란 술통에 함께 섞인 누룩과 고두밥은 2~3일후 발효가 시작돼 여름에는 7일, 겨울에는 10일 정도 지나면 술이 완성된다. 술통이 있는 방에 들어가자 “두두두두” 하는 소나기 소리가 들렸다. 직원들은 “술이 발효되기 시작하면 나는 소리인데, 이 소리가 술이 익는 소리”라며 즐거워했다. 발효가 끝난 술은 알코올 도수가 약 18도 정도 되기 때문에 물과 섞어 도수를 낮추는 과정을 거쳐 출시하게 된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16세기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금정산성 축성 때 인부들이 먹기 위해 만들어진 ‘쌀 술’에서 유래했다. 이후 일제시대를 거쳐 1950년대까지 명성을 떨쳤다. 60년부터 정부의 누룩 제조 금지 조치로 인해 밀주 단속을 받았다. 하지만 단속을 피해 명맥을 유지해 왔고 부산 군수사령관 시절 이 술을 즐겨 마셨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79년 ‘민속주 1호’로 지정되면서 양성화됐다. 현재의 양조장은 80년 산성마을 주민들이 모여 만들었다. 97년부터 양조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유 사장은 끊이지 않는 주문 전화와 손님 맞이에 쉴 새가 없었다. 그는 “요즘 막걸리 인기가 엄청나다”며 “올 들어 주문량이 확 늘었다”고 말했다. 750mL 용량의 막걸리가 하루 평균 4000~5000병씩 판매되는데 7대 3의 비율로 서울·경기도 지역이 부산 지역에 비해 더 많이 팔린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하루 평균 2000~3000병이 판매됐는데 올해 들어 막걸리 열풍을 타고 판매량이 두 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는 전통 방식으로 첨가제를 전혀 넣지 않아 먼 거리를 이동하면 막걸리의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택배 포장에 각별히 신경 쓴다. 이 때문에 아직 수출은 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일본인들이 이곳 산성마을까지 찾아와 막걸리를 사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450m 고산지대의 맑은 공기와 풍부하고 깨끗한 물, 시내에 비해 5도 정도 낮은 평균 기온으로 인해 특유의 맛이 만들어진다. 현재 이곳에서 생산할 수 있는 최대량을 매일 생산하고 있지만 전통 양조 방식으로는 쏟아지는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회사 규모를 키울 것을 권하는 사람도 많지만 유 사장은 그럴 계획은 전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기계를 이용해 대량생산하면 지금보다 많은 양을 만들어 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전통 방식을 유지하기 힘들고, 지금의 맛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 양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이제 한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곳은 우리 하나밖에 안 남았다”며 “우리마저 안 하면 전통이 다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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