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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전사했다, 자동응답기 속 목소리만 남기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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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04면

22일 개봉한 ‘굿바이 그레이스’는 별 기대 없이 보러 간 이들에게 ‘대어’를 낚은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영화다. 후반에는 하염없이 손수건을 적시게 하는 최루성 멜로물이지만,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방법은 꽤나 깔끔하다. 무엇보다 ‘반전(反戰)’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한 가족의 일상으로 풀어낸 미시적 접근이 효과적이다. 마트 매니저로 일하며 두 딸 하이디와 돈을 건사해야 하는 아빠 스탠리(존 쿠색). 엄마 그레이스는 직업군인으로 이라크에 가 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엄마의 부재는 구성원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영화 ‘굿바이 그레이스’, 감독 제임스 C 스트로즈, 주연 존 쿠색·셀란 오키프

스탠리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파병 군인 가족모임에 나가보지만 이질감을 느낄 뿐이다. 맏딸도 사춘기에 막 접어든 것 같아 슬슬 걱정이다. 막내는 엄마 없이 지내긴 너무 어리다. 그런 스탠리에게 아내의 전사 통지가 날아든다. 순간 세상이 정지한 듯하다. 하지만 충격을 추스를 새도 없이 남자는 깊은 갈등에 빠진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대체 어떻게 알리지? 주부이자 엄마 노릇을 해야 했을 때보다도 더 난감한 일이다.

스탠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갑자기 떠난 여행이니 당연히 이들의 동선은 갈 지(之)자다. 부모님 집에 불쑥 찾아가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다투기도 하고 대형 마트에 가서 아이들 옷도 사준다. 딸들이 그렇게 소원하던 귀도 뚫게 해준다. 놀이동산에도 놀러 간다.

여행 도중 남자는 집으로 몇 번 전화를 건다. 아내의 목소리로 녹음된 자동응답기 인사말을 듣기 위해서다. 늘 그랬듯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의논할 사람은 아내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들과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부짖는 남자. 전화기를 내려놓으면 다시 아이들에게 연극을 해야 한다.

한때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세렌디피티’ 등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도 했었던 배우 존 쿠색. 그는 ‘굿바이 그레이스’에서 좋은 배우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그 순간’의 공허함, 아내가 죽기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온몸으로 말하는 그의 열연은 화면을 꽉 메운다. 딸을 둔 중년 남성관객이라면 공감 백 배일 듯싶다.

이 영화는 2007년 미국 개봉 당시 반전 메시지를 신파조로 그려냈다는 이유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선댄스영화제에서는 관객상과 각본상을 받는 호응을 얻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작곡한 주제가 ‘Grace is gone’은 골든글로브상 최우수음악상과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와 신사동 씨네시티에서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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